[서경이 만난 사람] 김동연 아주대 총장, 학생 스스로 과목 설계해 수강…‘파란학기제’로 파란

형편 어려운 학생에 해외연수 제공
‘애프터유’로 사회적 이동 확산도

지난 1월 한 대학생이 특별한 수강계획서를 제출했다. 과목명은 ‘수화를 통한 농아인 심리상담’. 해당 대학의 총장과 보직교수, 학교는 심사를 통해 이 1인 맞춤형 과목을 정식 과목으로 인정해줬다. 하지만 한 학기(6개월) 동안 배운 수화 실력으로는 미세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심리상담이 어려웠다. 결국 학생은 학기 말 최종보고서를 통해 실패를 자인했지만 학교는 이 학생의 학점을 인정해줬다.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전’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다. 아주대가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파란(破卵)학기제’다.

파란학기제는 학생 스스로가 과목을 정해 제안하게 하는 학생 과목설계 프로그램이다. 알(卵)을 깨는(破)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틀에 박힌 세계를 깨고 새로운 도전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600㏄ 경주용 자동차 설계 및 제작 △해외영화제 출품 단편영화 제작 △미국 건축물 탐사 연구 △다중 드론 알고리즘 제안 등의 과목명에도 잘 묻어난다. 지난 학기 120명의 학생이 42개 과목을 설계해 참여했고 모두 830학점이 부여됐다.


파란학기제로 대학사회에 ‘파란(波瀾)’을 일으키고 있는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파란학기를 한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찾아서 도전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이 남이 하고 싶은 것,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어하는 걸로 착각한다”며 “30대 초반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당시 왜, 무엇을 공부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을 내지 못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고민이 내 인생을 바꿨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려고 파란학기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도 파란학기제를 통해 학생들이 과목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게 김 총장의 설명이다.

‘유쾌한 반란’이 생활철학인 김 총장의 반란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누구보다 가난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는 그가 만든 ‘애프터유(After You)’는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를 확산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적 반란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해외연수는 꿈도 못 꾸는 학생들에게 미국 명문대학인 미시간대·워싱턴대·존스홉킨스대와 중국 상하이교통대·베이징이공대 등에 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김 총장은 애프터유가 단순히 어려운 학생들에게 시혜적 도움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배려의 정신을 통해 소셜 모빌리티를 제고하고 그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하겠다는 게 목적”이라며 “이 때문에 선발 학생 중 20%를 다른 학교 학생으로 뽑는다”고 설명했다.

김 총장은 요즘 창업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과거식으로 직장에 취업하는 패러다임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총장은 “지금까지 교수가 교실에서 진행했던 창업교육을 현장으로 바꾸려 한다”며 “현장에서 실패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을 불러 학생들과 대화하게 하고 학교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주사를 만들어 투자도 일부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