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딜 발로치/페이스북 캡처
성 평등 주장으로 보수적인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20대 소셜미디어(SNS) 스타가 명예살인으로 목숨을 잃었다.
16일(현지시간) 파키스탄 경찰은 모델이자 가수, 소셜미디어 유명인으로 활약해오던 찬딜 발로치(26·사진)가 지난 15일 펀자브 주 물탄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발로치의 오빠 와심 아메드 아짐이 잠이 든 그녀를 목 졸라 살해했다는 진술을 그녀의 부모로부터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사건 발생 이후 집을 떠났던 와심 아메드 아짐은 이틀 만에 경찰에 체포됐으며,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본명이 파우지아 아짐인 발로치는 파키스탄 사회의 통념에 어긋난 행동과 발언이 담긴 SNS 게시물로 보수적인 파키스탄 사회에서 논란 속에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우리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위해 또 서로를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일어서야 한다”는 발언으로 성평등을 외쳤으며 “파키스탄이 크리켓 대회에서 우승하면 스트립쇼를 하겠다”는 이야기로 여성의 성적 발언을 금기시하는 파키스탄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그는 또 라마단 기간에 한 호텔 방에서 유명 종교 지도자와 나란히 셀카를 찍어 올린 일로도 구설에 올랐다. 이 성직자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발로치를 만났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해당 성직자의 자격을 박탈하며 강경하게 나왔다.
성차별이 심한 파키스탄에서 이처럼 튀는 행동과 발언을 거듭한 발로치는 페이스북 등에서 손꼽히는 인기스타였다. 특히 그는 여성에 대한 차별에 맞서 싸우겠다는 각오를 거듭 밝혀왔다. 살해당하던 날에도 그녀는 “그만두라는 협박을 아무리 받더라도 나는 싸울 것이다. 내 목표를 이룰 것이며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14일에는 “어떤 여성이 될지는 스스로가 결정할 필요가 있다. 평등을 믿는다. 나는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여성이며 이런 나를 사랑한다”고 적었다.
주관이 뚜렷한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파키스탄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명예 살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오스카상을 받은 파키스탄 국적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샤민 오바이드-치노이는 “여성을 죽이는 남자를 감옥에 보내는 선례를 만들지 않으면 이 나라에선 어떤 여성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NS에는 명예살인으로 목숨을 잃은 그를 추모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편 파키스탄에서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를 들어 오빠나 남동생 등 가족 구성원이 여성을 살해하는 명예살인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명예살인으로 파키스탄에서 희생된 여성은 1,096명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명예살인을 막기 위해 2005년 남성이 여성 친척을 죽여도 사면하도록 정한 법률을 바꿨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살인을 저지르고도 ‘피해자의 친척 등에게 용서 받았다’며 처벌을 면하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가족이 허락하지 않은 결혼을 한 여성이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와 오빠 등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일이 AFP 등 외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