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대출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한 시중은행 임원의 말이다. 금리를 아무리 낮게 책정하더라도 공장에 투자하고 수출에 나서는 기업들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중소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시중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579조1,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7,000억원 늘었다. 하지만 개인사업자대출(249조4,000억원)을 제외한 순수 중소기업대출은 2,000억원 감소해 2013년 6월 이후 3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한은의 ‘정밀타격형’ 통화정책인 금융중개지원대출마저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활력을 잃은 가장 대표적인 기업군은 수출업체다. 한은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수출 때문에 투자에 소극적인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올 초 금융중개지원대출 중 무역금융지원 프로그램의 한도를 1조5,000억원에서 4조5,000억원으로 세 배 늘렸다. 대출 금리도 0.75%에서 0.50%로 낮췄다. 하지만 6월 말 잔액은 1조5,460억원으로 대출이 본격적으로 실행된 5·6월 대출 실적이 거의 ‘제로(0)’ 수준이다. 금융중개지원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한도 8조원)을 차지하는 설비투자 지원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6월 말 현재 설비투자 잔액 규모는 5조8,150억원으로 3월에 반짝 7,000억원가량 늘어난 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가장 큰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창업지원은 되레 뒷걸음질이다. 2월까지만 해도 3조원에 육박했던 창업지원 프로그램의 잔액은 6월 말 2조7,410억원으로 쪼그라들어 있다. 창업지원 프로그램은 기업이 은행에 대출을 받을 때 전체 규모의 75%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최대 1.1%포인트의 금리 인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무역금융과 수출의 지원 비중은 25% 정도로 금리 인하 효과는 0.3%포인트가량이다. 특히 3월 한은은 기존 기술형 창업에서 일반형 창업까지 지원 대상 범위를 넓혔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금융중개지원대출이 기업의 투자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인센티브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은행에 ‘나눠주기식’인 현행 방식은 0%대의 정책자금이 기업으로 흘러들어 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금융통화위원 출신의 한 금융권 인사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통해 기존 산업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면 그 자리를 스타트업들이 채워야 산업의 선순환이 이뤄진다”며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한은의 금융중개지원대출인 만큼 지금의 형식적인 지원체계보다는 은행 간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인센티브 체계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 대출 적용 조건도 보다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중은행의 또 다른 관계자는 “기술형 창업의 경우 금융중개지원대출을 받으려면 기술등급이 꽤 높아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좀 더 낮추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전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