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번에는 다가올 여름 휴가시즌을 맞아 기차로 하는 장거리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이번에 아기와 떠날 곳은 바로 ‘천년고도’ 경주입니다.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서 경주로 떠나는 건 사실 자동차로는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켜보니 교통 정보를 반영한 이동시간은 약 4시간. 중간중간 아기의 상태에 맞춰 휴게소에 들렀다가는 이동 시간만 반나절이 소요될 거예요. 경주를 오가는 교통수단으로 KTX를 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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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역시 이동시간이 긴 차보다는 열차에서 훨씬 잘 있습니다. 종종 돌발행동을 해 엄마 아빠의 진땀을 빼기도 했지만, 아기는 열차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비교적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아기의 낮잠 시간에 맞춰 열차 시간을 잡은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아기가 잠을 잔 덕분에 2시간의 탑승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어요.
내려서는 바로 차를 빌렸어요. 신경주역에는 주차장 내부에 렌터카 회사들이 있었는데, 따로 예약하고 가지 않아도 차량은 넉넉했어요. 물론 제가 갔을 때는 비성수기로 분류되는 시기였으니, 성수기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가족이라면 미리 예약을 하는 편이 좋겠죠?
신경주역에서 관광지들이 몰려 있는 경주 시내까지는 약 30분 정도 소요가 됩니다. 신경주역에도 수유실이 깨끗하게 마련돼 있으니 출발 전에는 수유실에 들러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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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강하게 양념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17개월 아기를 동반한 저희는 밑반찬들이 대부분 짜서 먹일 수 없었답니다. 다행히 아기가 고기와 잔치국수를 잘 먹었지만 조금 아쉬운 점이었어요.
배가 부르니 이제 여행지를 둘러볼 시간입니다. 식당이 있었던 곳은 호수를 끼고 형성된 보문단지로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이라면 한 번 정도 들르게 되는 곳이에요. 주요 호텔·콘도들이 모여있고 동궁원·테디베어 박물관 등 볼거리도 많거든요. 이곳은 특히 한국관광공사에서 ‘열린 관광지’로 선정할 만큼 아기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좋은 여행지랍니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타고 아무런 불편 없이 호수 주변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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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더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았지만, 저희는 예기치 못한 변수로 인해 서둘러 마무리 짓고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습니다. 제가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거든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신경주역과 광명역의 코레일 직원분들이 휠체어를 빌려주시고 승하차를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서울로 올 수 있었어요. 광명역에서는 주차장에 있는 차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주셔서 큰 어려움 없이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분들이나 몸이 아픈 승객들을 위해 이런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됐어요.
아기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뒤 ‘건강한 성인’이 아닌 사람들의 이동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몸이 아팠던 이번 여행에서는 특히 더 그랬어요. 휠체어길이 곧 유모차길이거든요. 그래도 경주의 보문단지처럼 ‘열린 관광지’가 생기고 기차 이용 시에도 다양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거겠죠?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아기를 가진 엄마들도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집밖에 나설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필진> 연유진·이수민기자
각각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초보 엄마. 출산과 육아 휴직 기간, 집에만 갇혀 있는 생활이 답답해 아기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돌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보 엄마 숨통 터지는 유모차 여행’(다봄)을 공동 집필했다. 회사에 복귀해 워킹맘으로 직장 생활하는 지금도 주말이나 휴가 때면 짬을 내 나들이나 여행을 다니고 있는 이들은 이 땅의 초보 ‘맘(Mom)’들이 조금이라도 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도록 다양한 팁을 담아 여행기를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