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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4일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국제무용총회’에서 한국 대표로 창작 발레 ‘워크 투 에스 중에서(Among the Work 2S)’를 선보이는 김 교수를 지난 18일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에는 ‘워크 투 에스 중에서’라는 제목으로 선을 보이는데 제 작품 중에서 ‘워크 투 에스’는 외국 무대에 올릴 때는 여정(Voyage)이라는 제목을 사용해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항상 타인과 그 무엇에 대해서 의식을 하는데 그게 부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 부자연스러운 ‘의식’에 영혼을 잠식시키지 말고 자유로워지자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이 작품에서 여자 주인공의 영혼을 갉아먹는 ‘의식’은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로 표현됐다. 이에 대해 그는 “유치하게 말하면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저승사자예요. 죽음의 그림자이자 여자가 의식하는 존재로 항상 여자를 움직이고 잡아서 돌리고 매치면서 ‘죽음’의 길로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포트라이트만을 받으며 단 한 번도 역경을 겪었을 것 같지 않은 김 교수. 그러나 그는 프랑스 파리 오페라발레단 시절 감정적 죽음까지 경험했다고 한다. 발레에 비극이 많다고는 하지만 창작발레에서 삶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데는 그의 당시 정서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발레 아니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는 그에게 발레리노로서의 실패는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잘해보겠다고 한국을 떠나왔는데 승진도 안 되고 역할 없이 그냥 앉아만 있던 3~4년 차 때 고민이 많았어요. 한국에 휴가왔을 때도 사람들을 피해 다녔어요. 안 나가던 새벽기도도 나가고 하느님 붙들고 버텼어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본 (승진)시험에 합격하면서 솔리스트가 됐어요.”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3위, 파리콩쿠르 2인무 부분 1위,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장 등 그의 머리 위에 올려진 왕관의 무게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삶과 죽음의 경계이자 현재의 김용걸을 존재하게 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미치도록 춤을 추고 싶다는 김 교수. 그러나 무용수들이라면 흔하게 겪는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무대에 서기는 힘들다. 대신 안무로 토해내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전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드러냈다. 오는 10월에는 세월호·위안부 등 우리 사회의 이슈를 소재로 한 ‘수치심에 대한 기억(The Memory of Shame)’을 한예종 학생들과 선보일 예정이다. “사회에서 서서히 잊혀지는 기억들을 보면서 저를 포함해서 관객들이 함께 고민하고 부끄러워했으면 해요. 그런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이에요.”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