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택 "세계경제 판 바뀌는데...구조·산업개혁 인식 너무 안일"

[서경이 만난 사람-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美-신산업 中·日-구조개혁 속도내는데 한국은 규제 여전
브렉시트 찻잔속 태풍 아냐...실물경제 장기간 영향 줄것
中 경착륙 우려는 지나쳐...TPP는 빨리 가입할수록 유리

현정택 KIEP원장
“세계 경제의 판이 바뀌고 있습니다. 미국은 신산업 혁명으로 세계 경제 회복을 주도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은 구조개혁과 경제체질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규제가 여전합니다. 정치인과 국민들의 구조개혁에 대한 인식은 일본보다 못하고 중국은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취임 한 달여 만인 지난 22일 세종시 집무실에서 만난 현정택(67·사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질타했다. 현 원장은 “세계 경제가 변화로 요동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구조개혁이나 산업개혁에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가 실물경제에 오랫동안 우환거리가 될 것으로 봤다. 현 원장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2~5년간 불거진 잡음이 유럽 경기를 끌어내리면 대EU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의 타격이 불가피하고 이 여파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 이어질 것”이라며 “브렉시트가 세계 경제를 다시 구렁텅이 속으로 빠뜨리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으로 커지고 있는 중국과의 갈등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무역보복은 어렵다”면서도 “중국이 우리와의 서비스협정에 미온적으로 나올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부처 고위관료와 국제통상학 교수, 국책연구원 원장 등을 지낸 국내 대표 거시경제학자이자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을 지냈던 현 원장에게 세계 경제의 격변기에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어봤다. /대담=김정곤 경제부 차장 mckids@sedaily.com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경제성장률을 또 낮췄는데.

△IMF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2%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은 브렉시트 때문이다. 브렉시트 직후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다 금방 안정을 찾자 브렉시트가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잘못 짚었다. 브렉시트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를 볼 때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IMF는 2008년 이후 매년 세계 경제의 회복을 얘기해왔지만 구호에 가까웠다.

다만 올해는 달랐다. 미국 경제의 견조한 추세를 볼 때 내년 상반기에는 오히려 경제성장률을 상향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세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는 시점에 브렉시트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영국 경제가 둔화되면 EU가 영향을 받는다. EU는 중국의 최대 수출시장인데 중국 경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면 우리의 대중 수출도 흔들린다. 브렉시트는 우리 실물경제에 장기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구조적 저성장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가 더 안 좋아진다는 얘기인가.

△올해 정부를 비롯해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기관들은 우리 경제성장률을 2.6~2.8%로 하향 조정했다. 3% 성장은 어렵다는 말인데 이 수치들은 모두 영국이 EU에 잔류한다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 경제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 물론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과거처럼 고성장하는 것은 힘들다. 2005년 KDI 원장으로 있을 때 경제성장률이 4~5%였다. 그때 3% 후반대로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려 하니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이렇게 낮은 수치를 제시해도 되느냐는 건데 지금은 2%대도 힘겹다.

또 세계 경제의 판이 바뀌는 상황에서 경제가 3% 성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 한 해 성장한다고 우리 경제가 엄청나게 개선되지는 않는다. 미국은 신산업으로 가고 있고 중국은 고부가가치화하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부활 중이다. 우리도 구조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아주 심각한 문제다.

-중국과 일본의 구조개혁이 우리와 다른 점은.

△중국은 과거 세계의 공장에서 지금은 세계의 시장이 되고 있다. 대규모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흑자가 어마어마해 미국이 난리가 아니었나. 하지만 2006~200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 수준이던 경상수지 흑자가 3%까지 내려왔다. 지난해 소비의 성장 기여도는 1년 사이 52%에서 66%까지 높아졌고 서비스업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서며 경제체질 개선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일본도 아베노믹스가 진행 중이다. 우리가 애써 폄하하고 있지만 일본 경제가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7~8%로 제조업 의존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력제품의 30%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하락을 겪고 있다. 서비스업 확대를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10년 전 KDI 원장을 할 때부터 강조했지만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백악관에서 아시아를 담당하던 한 보좌관이 한미관계의 가장 큰 제약요인이 북한도, 중국도 아닌 한국 경제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 과거 한국은 경제성장으로 공산주의를 이긴 대표적 성공 모델이고 미국은 이를 적극 지원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가 둔화되고 있고 한국인들은 이 심각성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다더라. 정확하고 뼈아픈 지적이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지 않나.

△미국과 유럽 시각에서 보면 중국은 무지 위태롭다. 특히 금융 쪽이 그렇다. 하지만 아시아나 중국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중국의 잠재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14억명에 달하는 인구를 한 나라가 먹여 살리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과거 14% 성장하던 것에서 6%대로 낮아진 것이지만 지난 10년간 경제 규모가 2.6배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성장하는 절대 규모는 더 커졌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경제가 연 3~4% 성장하면 거의 기적이다. 미국 경제의 60%에 육박하는 중국 경제는 아직 6~7% 성장하고 있다. 세계 경제로서는 축복이다.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가 30%에 달하는 중국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제대로 된 분석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지급준비율과 금리 인하, 위안화 평가절하 등 다양한 경기 대응수단이 있고 경기가 더 나빠지면 구조개혁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 중국의 본질적인 문제는 사회주의체제의 정치와 자본주의체제의 경제가 양립하고 있는 점이다. 시장이 커지면 둘은 상충할 수밖에 없다. 이 두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사드 문제로 중국이 무역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이유로 경제·통상 부문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기는 어렵다. 우선 중국은 두 가지에 묶여 있다. 국제무역체제인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인데다 우리와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다. 국제무역협정을 준수해야 하는 중국이 다른 회원국에 책잡히지 않고 무역보복을 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존 무역질서 외에 앞으로 중국과 하는 일들은 얘기가 다르다. 가령 한중 FTA 서비스협정이 남아 있는데 중국이 열린 자세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서비스 시장을 여는 것은 중국이 경쟁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기회를 주겠다는 얘기다. 우리가 우위에 있는 한류 관련 비즈니스 등을 중국에 어필해야 하는데 중국이 쉽게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중국 주도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마찬가지다. AIIB가 국제적으로 정착돼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위치에 대해) 중국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등 미국의 대선후보들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부정적이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12개국이 동시에 무역장벽을 허무는 TPP는 새로운 무역통상질서다. 발효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최대한 빨리 가입할수록 유리하다. 수출 중심인 우리 경제가 잘되려면 WTO가 잘 작동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FTA 같은 지역협정으로 움직여야 한다. 사실 새로운 무역질서를 만드는 데 한국이 관여해야 했다. 초창기에 들어갔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TPP가 일본과의 FTA 효과도 있어 우리 중소기업과 농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일본은 역내 최고급 소비재 시장이자 인구 1억3,000만명에 달하는 거대시장이다. 대일 무역을 부가가치 관점으로만 보면 적자 규모는 크지 않다. 일본에 대한 우려는 다소 과대포장돼 있다고 본다. 농업은 수출 기회가 될 수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 양국 산업은 경쟁이 치열한 분야는 산업 구조조정을 하고 협력이 필요한 분야는 기업 간 전략적 제휴를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어디서 기회를 찾아야 하나.

△얼마 전까지 우리가 중일 사이의 넛크래커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글로벌 가치사슬(GVC) 관점에서 보면 세상 모든 나라는 서로 우위와 열위 산업이 나뉘는 넛크래커에 끼여 있다. GVC 구조에서 계속 위로 올라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중국이 아니라 어떤 나라와 경쟁해도 이길 수 없다.

우선 세계 50여개 국가와 맺은 FTA에 중소기업이 올라타게 해야 한다. 중기를 GVC에 편입해 수출 다변화와 품목 확대를 노려야 한다. 수출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도 필요하다. 매번 ‘수출액이 얼마 늘었다, 줄었다’는 것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최종 수출액보다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했는지, 어느 제품의 부가가치가 높은지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연구개발(R&D)을 통해 우리가 경쟁력을 보유한 전자, 기계, 자동차 부품 등은 고부가가치화해 GVC 위로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일반 철강에서 특수강으로, 바이오로 주력제품이 옮겨가야 우리가 살 수 있다. 경쟁우위가 있는 서비스업도 거대 내수시장인 중국에 수출해야 한다. /정리=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사진제공=대외경제정책연구원

He is

△1949년 경북 예천 △1967년 경복고 △1971년 서울대 경제학과 △1982년 MIT 경영학 석사 △1993년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1971년 행정고시(10회) △1995년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1998년 대통령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 △2001년 여성부 차관 △2002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2003년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2005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2010년 무역위원회 위원장 △2013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2015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 △2016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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