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겸 삼성디스플레이 대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인 아산을 찾아 업무를 본다. 회사 규모상 삼성전자 업무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디스플레이 사업에 대해서도 매우 꼼꼼히 챙긴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삼성디스플레이 임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급도 기존 대표들보다 높은 부회장인데다 권 부회장이 워낙 세세한 부분까지 업무를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권 부회장은 지난 2012년 디스플레이를 직접 맡은 적이 있어 내용을 너무나 잘 안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기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오는 29일 권 부회장의 대표 취임 석 달을 맞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업무 내용부터 조직, 미래 사업방향까지 100일도 안된 상황에서 회사가 달라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권 대표가 1·4분기 약 2,700억원의 적자 이후 최고경영자(CEO)를 맡게 된 만큼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24일 삼성에 따르면 최근 들어 삼성디스플레이의 무게중심이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OLED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기 때문인데 삼성의 경우 권 대표 취임 이후 이 같은 변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당장 해외 투자자들이 삼성의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서 있었던 삼성전자 컨퍼런스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삼성의 OLED 투자 및 휘는(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기술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며 “이 두 가지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폰이 태블릿의 기능까지 대체할 수 있다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전했다.
실제 삼성의 움직임은 발 빠르다. 당장 삼성디스플레이는 하반기 중에 시험생산용 OLED TV 라인을 없애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OLED TV 생산계획을 접은 만큼 시험적으로도 운영할 라인이 쓸모없다는 판단에서다. 삼성 측은 “없애는 것이 맞지만 향후 용도는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중소형 OLED 패널 생산용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또 연말까지 아산에 있는 7세대 LCD 1라인을 폐쇄하기로 했다. 재계에서는 해외 매각 가능성 등을 점치고 있다. 7세대 라인은 월 15만장을 생산하는 1공장과 17만장을 생산할 수 있는 2공장으로 이뤄져 있다. 이미 삼성디스플레이는 200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5개의 LCD 라인을 철수시켰다. 현재 남은 것은 천안에 6세대와 아산에 7~8세대, 중국 쑤저우의 8세대 정도다.
이보다 앞서 권 대표는 LCD와 OLED 관련 조직도 일부 정비했다. LCD와 OLED에 공통으로 있던 품질관리와 모듈을 각각의 사업부에 다시 배치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측은 “과거에도 유사한 조직 편성을 갖추고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권 대표 취임 이후 회사가 물밑에서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권 대표 취임 이후인 2·4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2·4분기에 1,000억~2,00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LCD 부문에서 5,000억원대의 손실을 내지만 중소형 OLED 부문에서 7,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 최근 애플과의 공급계약으로 내년에만 OLED 디스플레이를 약 4,000만장 공급할 예정이다. 또 중국 업체들이 앞다퉈 자사의 스마트폰에 OLED 탑재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 올 상반기에만 중국의 화웨이와 비보·오포 등이 OLED를 디스플레이로 썼다. 중소형 OLED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삼성 입장에서는 그만큼 매출 측면에서 유리하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권 대표는 오로지 기술력과 회사 경영에만 관심을 갖고 이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라며 “권 대표의 특성상 기술방향 정한 데 맞춰 외부적으로 보면 조용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빠르게 조직을 바꿔나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