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이것이 문제다] 2004년 접대비 실명제 때는 어땠나

법인카드 사용실적17% 줄어… 감소폭 금융위기 직후의 4배

접대비 실명제가 시행된 지 한 달여가 지난 2004년 2월11일. 참여정부의 두 번째 경제사령탑인 이헌재 부총리는 취임 첫날 이용섭 당시 국세청장을 만나 “의도는 좋을지 몰라도 시기는 적절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접대비 실명제란 기업에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목적과 접대 상대방의 상호, 사업자등록번호 등 증빙서류 제출을 의무화한 제도로 2004년 도입됐다가 2008년 폐지됐다.

이 전 부총리가 시행한 지 한 달여밖에 안 된 정책을 도마 위로 올린 이유는 뭘까. 2003년 신용카드 대란으로 우리 경제는 소비위축이라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 와중에 접대비 실명제가 시행되면서 가뜩이나 위축됐던 내수가 극도로 얼어붙은 것이다.


당시 소비 관련 지표는 접대비 실명제가 내수를 얼마나 위축시켰는지 잘 보여준다. 2004년 한 해 국내 기업의 카드사용 금액은 83조3,419억원으로 전년보다 16.8%(16조8,751억원) 줄었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경제가 휘청거렸던 2003년(-8.7%)보다 감소폭이 두 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3.8%)과 비교하면 네 배에 달했다.

상품권 판매가 줄면서 백화점 매출도 급감했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2003년 5.4% 줄었던 백화점 매출은 이듬해인 2004년에도 4.8% 감소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총생산(GDP)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그해 0.3% 성장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0.2%)과 비슷한 수준이다.

시행을 두 달여 앞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내리막길을 걷는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당시의 데자뷔에 가깝다. 김영란법은 접대비 실명제보다 더욱 강력하다.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받으면 김영란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적용 대상도 공공기관 종사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 400만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약이 될 수 있지만 단기적 충격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법 취지와 상관없이 부작용이 아주 크게 나타나는 부분은 시행 과정에서라도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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