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디테일’에서 시작됩니다. 기존 시장의 모자람과 빈틈에서 창업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커피제조업 20년 경력의 여성기업인 이은정(52·사진) 한국맥널티 대표는 청년 예비 창업자들에게 ‘작은 부분’에서 가능성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는 최근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 창업진흥원·벤처기업협회와 함께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연 ‘청년기업가정신 연합 포럼’에 패널로 참석해 “하나의 산업을 현미경 보듯 치밀하게 살펴보고 다시 멀찍이 물러나 관찰을 반복하면 시장의 허점이 자연스레 보인다”며 “이것이 청년들이 열정을 쏟을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지난 1993년 29세에 카페를 차렸다. 다디단 인스턴트커피가 대세이던 시절 한국에 원두커피를 처음 들여왔다. 이 대표는 “당시 원두커피는 특별소비세가 붙을 정도로 사치품으로 여겨졌지만 외국처럼 우리나라 커피 시장도 바뀔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1995년 수입회사를 세워 원두가공품을 들여와 백화점에 공급했고 마침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대형할인점 열풍에 힘입어 사업은 급성장했다. 국내에 처음 지퍼 팩 포장을 내놓은 것도 이때다. 그는 “단순 수입에서 벗어나 직접 로스팅·블랜딩 하는 원두커피 제조에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기존의 커피 산업은 물론 원두 수입 사업도 큰 타격을 입었는데 회사가 위기에 직면하자 예상 밖으로 그가 선택한 것은 원두 가공업체인 미국 맥널티 인수였다. 18년이 지난 현재 한국맥널티는 국내 원두커피 시장 점유율 24%로 1위를 점하고 있다.
그는 “IMF 시기 제조업에 뛰어들 때 미친 짓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세계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했다”며 “처음에 두렵고 어려웠던 결정이 훗날 잘된 결정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벤처업계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커피 창업 후 10여년이 지난 2006년 이 대표는 돌연 제약회사를 사들여 새 시장에 뛰어들었다. 천안에 공장을 짓고 한미약품·녹십자 등에 위탁 생산·공급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부터는 미국에 감기약을 수출하고 있다. 그는 “10여년간 번 돈을 모두 중앙연구소 등 제약 연구개발(R&D)에 투자했는데 올해는 첫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며 “한쪽에서 벌고 다른 한쪽에는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투자하는 이른바 ‘기업의 두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야 지속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어려운 일을 어렵다고 생각만 한다면 영원히 도전할 수 없다”며 “인생에서 언젠가 한 번 도전할 일이라면 지금 당장 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3년부터 1년여간 여성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았다. 여성 최고경영자(CEO)라고 해 달리 장단점은 없지만 여성의 시각으로 도전할 분야는 무궁하다고 진단한다. 그는 “그동안 한국이 ‘중후장대’ 산업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다양한 분야에서 히든 챔피언이 많이 나오지 못했다”며 “여성용 제품·시장의 경우 아직도 허술한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개선하는 사업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