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머 헐버트 박사
“100년 전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가 당시 중국의 고위 인사와 교류하며 한글 사용을 제안했을 것입니다. 헐버트는 한민족의 말글·문학·예술·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한 한국학 개척자입니다.”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YMCA에서 열린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헐버트의 공적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기념사업회는 최근 한글을 외국에 알리고 조선의 독립운동에 힘쓴 헐버트가 쓴 신문기사 등 저작들을 책으로 엮어 내놓았다. 이 책은 헐버트가 조선에서 생활하며 쓴 논문과 기고문 등 57편을 소개한다. 30편은 한국에서 발행된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The Korean Repository)’과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에 실린 글이고 나머지는 외국 신문·잡지 기고문 등이다.
26일 종로구 서울YMCA에서 열린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방한한 헐버트는 일제의 박해를 받아 미국으로 쫓겨난 1907년까지 AP통신 등의 특파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미국·영국 신문에 보낸 기사 13편에서 조선의 풍속을 소개하며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하고 훈민정음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한글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헐버트는 특히 중국과 일본에 한글 또는 한글을 바탕으로 한 문자를 쓰도록 제안했다. 그의 손자가 보관하고 있던 미국 신문기사에는 헐버트가 중국에 한자 대신 새로운 글자 체계를 제안했고 중국 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글자 수가 수만 개인 표의문자를 버리고 한글을 바탕으로 한 소리문자를 쓰자고 했다는 내용이다. 제호와 발행 일자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중화민국 건국 등 기사의 문맥으로 보면 헐버트가 미국에 돌아가 살던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시의 신문인 ‘리퍼블리컨’지의 1913년께 기사로 추정된다.
김 회장은 “헐버트가 당시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조선에 상주하던 위안스카이 등 중국의 고위 인사와 교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 대총통이 된 뒤 ‘조선의 한글을 중국인에게 가르쳐 글자를 깨우치게 하자’고 제안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미국 하와이에서 발행되던 잡지 ‘태평양’ 1913년 11월호에 “지금 청국에서 수입하여 청인들이 이 국문을 이용하도록 만들려 하는 중이니 국문의 정묘(精妙)함이 이렇습니다”라고 썼다. 헐버트는 회고록 ‘헐버트 문서’에서 “200개가 넘는 세계 여러 나라 문자와 비교해봤지만 한글과 견줄 문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한글은 배운 지 나흘이면 어떤 책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뿐 아니라 일본도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뜻을 피력했다.
책에는 헐버트가 1893년 국제설화학술회의에서 단군신화를 소개한 발표문, 123가지 조선 속담을 영문으로 옮기고 해설한 원고도 실렸다.
김 회장은 “헐버트는 정의·인간애·실용의 가치관으로 신학문에 큰 울림을 준 문명화의 선구자”라며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역사서인 ‘한국사’를 집필하는 등 인간의 무한함을 보여준 경이로운 저술가였다”고 덧붙였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