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필의 음악 이야기] 연주가와 공항

류정필 테너
연주가들은 공연을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더 정확하게는 연주가가 되기 전부터 수많은 오디션과 경연대회를 참가하며 많은 곳을 다니기 시작한다. 성공한 연주자가 되어갈수록 더 많은 출연 요청이 들어오고, 연주자는 새로운 청중을 만나기 위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연주자라면 필연적으로 가까워지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공항이다.


대부분 연주가들이 공항에 얽힌 자신만의 에피소드를 한가지 이상 갖고 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는 공항에서 책을 읽다가 너무 심취한 나머지 비행기를 놓친 일이 있다고 한다.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는 그의 자서전에 아예 ‘오페라 하우스와 공항’이라는 챕터를 만들어 본인이 경험한 연주여행에 대해 기술해 놓기도 했다.

오래 전 필자가 미국에 처음 연주를 하러 갈 때의 일이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아틀란타 공항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페인에 살고 있어 유럽의 또박또박한 영어 발음에 익숙해 있던 필자에게 미국 사람들의 영어는 도무지 알아듣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단 도착한 도시 ‘아틀란타’의 발음을 알아듣는 일조차 쉽지 않았고 특히 흑인들의 발음은 정말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배가 고파 왔다. 주위를 살펴보던 중 한국에도 있는 치킨집 ‘파파이스’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곧장 그곳을 향했는데, 아뿔싸! 이곳의 직원들이 모두 흑인이었다. 주문대 앞의 덩치 큰 흑인 아주머니가 뭐라고 자꾸 묻는데 식은땀이 났다. 흑인 아주머니는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 동양 젊은이가 귀엽다는 듯 껄껄 웃기 시작했고 필자는 너무 창피해서 어디론가 숨고 싶은 심경이었다. 세 번, 네 번 반복한 끝에 겨우 알아들은 그 질문은 바로 ‘스파이스 오어 마일드(Spicy or mild)’, 즉 ‘매운 맛으로 줄까, 순한 맛으로 줄까’였다.

지난주 필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주최하는 하계성수기 정기 공연에서 노래를 했다. 로비 1층에 무대를 만들어 공항의 모든 이용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공연이다. 스페인의 가곡 ‘그라나다’를 부르며 노래 끝에 ‘올레’라는 추임새를 넣었더니 인천공항을 찾은 스페인어권 외국어 청중들이 더욱 큰 소리로 올레를 따라 외쳐주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듯 우리나라에 도착하거나 떠나는 사람들이 공항에서 이런 음악회를 접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으로 피곤하거나 예민해져 있을 때 이러한 뜻밖의 공연은 마음에 편안함과 행복감을 제공해주곤 한다.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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