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이 종종 영화의 소재가 된다. 스페인 영화 ‘아마도르(Amador·2010년)’가 그 부류다. 일자리가 궁한 청년 마르셀라가 등장한다. 그는 노인 아마도르의 간병을 맡는 대가로 노인의 딸에게서 월 500유로(약 63만원)를 받기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이 죽는다. 돈이 필요한 마르셀라는 이를 숨기기 위해 집안을 꽃과 방향제로 채운다. 갑작스러운 딸의 방문으로 노인의 죽음이 들통 나는데 반전이 일어난다. 딸은 오히려 잘했다며 부친의 연금이 필요하니 마르셀라에 두세 달만 더 버텨달라고 부탁한다. 두 청년이 노인 한 사람의 연금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슬픈 군상의 이야기다.
영화 속 모순은 스페인의 현실이다. 실업률이 20%를 웃도는 어려운 경제 사정과 다르게 노인 복지 수준은 높다. 연금을 받는 고령층의 평균 수입이 젊은 노동자들의 임금수입을 추월할 정도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임금은 오르지 않았는데 연금은 오히려 조금씩 인상되면서 일어난 소득역전이다. 스페인뿐 아니라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빈곤에 청년들은 화가 나 있지만 정부는 그들을 달래지 않는다. 이미 마음이 떠난 청년들보다 정부의 무능을 욕하면서도 노후 복지에 과잉반응하는 ‘집토끼’ 같은 장·노년 유권자를 붙잡는 편이 선거에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명제는 현실에 가깝다. 청년세대의 일방적 박탈감으로 부풀어 오르는 세대갈등을 기성세대가 풀어야 하지만 유럽 선진국도, 우리나라도 그 의지는 부족하다.
청년 일자리 대책만 봐도 그렇다. 박근혜 정부 이후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투입한 재정이 최근 3년간 4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구직자들에게 청년고용대책은 단지 취업률 숫자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인턴 같은 한시적 일자리만 잔뜩 늘린 대규모 비정규직 채용 쇼에 불과하다. 청년고용대책을 통해 취업한 청년 비정규직 비율이 구직자 스스로 취업한 비정규직 비율을 훨씬 웃돈다는 정부 통계에서 보듯 실질적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폭염속에 청년들이 숨 막힐 이야기는 계속된다. 서울시가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의 첫 대상자를 곧 발표할 예정이지만 보건복지부와의 힘 겨루기로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첫 수당 지급은 결국 무산될 공산이 커졌다. 정부 말대로 서울시의 독단일 수 있다. 그러나 수당이 작은 위안과 희망이 될 만한 청년 복지인지 우선 시험할 기회를 갖고 나중에 절차상 정당성을 따질 일이다. ‘어둡다고 불평하기보다 촛불 하나 켜는 게 낫다’는 인도 평화운동가 사티시 쿠마르의 말처럼 저성장 시대 세계 경제만 탓하고 있느니 그들이 잠시 숨 돌릴 작은 그늘 하나라도 찾아보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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