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가족 계좌 인출해도 채무상속 의무 없어"

숨진 가족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사실만으로 채무를 상속받을 의무가 생기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단독 임종효 판사는 H 은행이 숨진 고객 박씨의 아내 김모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박씨는 2008년 7월 H 은행에서 4억 8,0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박씨는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한 채 2011년 12월1일 사망했다. 박씨가 미처 갚지 못한 돈은 지난해 7월말 기준 원금 3억 7,000여만원, 지연손해금 1억 8,000여만원 등 총 5억 5,000여만원에 달한다. 아내 김씨와 자녀 등 박씨 가족들은 2012년 1~2월 모든 상속을 포기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은행은 박씨 아내를 상대로 지난해 8월 소송을 냈다. 아내 김씨가 상속포기 전인 2011년 12월20일 남편의 계좌에서 500만원을 인출한 점을 이유로 들어 상속의무를 넘겨받았다고 은행은 주장했다. 실제로 김씨는 남편 계좌와 연동된 신용카드 대금을 내기 위해 자신의 돈 500만원을 입금했다가 이후 사회보장급여 700여만원이 입금되자 다시 인출했다.

하지만 법원은 남편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했다는 것만으로 ‘단순승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단순승인’이란 상속인이 재산을 물려받겠다고 수락하는 것을 뜻하는데, 현행 민법은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재산을 처분한 경우 ‘단순승인’이 성립한 것으로 본다.

임 판사는 “상속받은 빚을 자신의 돈으로 갚으려다가 나중에 충분한 돈이 입금되자 변제 의사를 철회한 것”이라며 “이 같은 행동을 ‘단순승인’으로 보고 채무를 상속받을 의무를 지운다면 처음부터 빚을 갚으려는 선량한 뜻을 품지도 않았던 경우 아무런 제한 없이 상속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할 때 형평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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