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UX혁신팀 선임은 딱딱한 정보기술 기기에 감성을 불어넣는 ‘언어 디자이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딱딱한 정보기술(IT) 기기에 감성을 불어넣어 사용자들이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죠.”
박은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UX혁신팀 선임은 사내에서 ‘언어 디자이너’로 불린다. 스마트폰 팝업이나 설정·도움말 등 각종 문구를 검수하고 작명하는 게 주 업무다. 지난해까지는 ‘테크니컬 라이터’로 불렸지만 올 들어 명칭이 ‘UX(user experience)라이터’로 바뀌었다. 사용 매뉴얼을 만드는 역할은 같지만 전달 방식이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 테크니컬 라이터가 기술적인 부분을 쉽게 이해하는 부분에 초점 맞췄다면 UX라이터는 사용자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배려하는 글 전달에 집중하게 된다.
최근 서울 우면동 삼성전자 연구개발(R&D)센터에서 만난 박 선임은 “스마트폰에서 ‘비행기 탑승모드’를 실행하고 끄면 어떻게 되는지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자신의 일부처럼 여기는 만큼 기능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박은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UX혁신팀 선임은 딱딱한 정보기술 기기에 감성을 불어넣는 ‘언어 디자이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예를 들어 지문인식의 경우 손가락을 어떻게 스마트폰에 대야 하는지 표현하기 쉽지 않다. 박 선임은 예시로 문구를 만들어 동료들에게 해보라고 하는 등 오랜 고민 끝에 ‘손가락을 홈버튼 위에 정확히 올린 다음 아래로 내리세요’와 같은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만약 인식이 되지 않았다면 사용자의 지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가락 위치를 바꿔서 다시 한 번 시도하세요’ 같은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갤럭시’가 제공하는 기능 중에는 시청각이 약한 사용자를 위한 ‘접근성 기능’도 있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기능이다. 시력이 약한 사용자는 배경화면을 중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한 것이다. 박 선임은 “눈을 감고 들었을 때 이미지가 얼마나 잘 연상되는지 처음으로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며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기능은 아니지만 눈에 바로 그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고민한 만큼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박 선임은 앞으로도 전자기기에 인문학적 감성을 잘 넣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대학원 재학 중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박 선임은 지난 2013년 삼성전자로부터 ‘인문학적 감성을 지닌 작가를 영입하고자 하니 함께 일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합류했다. 그는 “전자기기에 인문학적 감성을 넣는다는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고민을 토대로 더 좋은 문구 등을 통해 IT 제품들을 더 따뜻하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 선임은 테크니컬 라이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삼성전자 면접 당시 프레젠테이션을 ‘갤럭시 노트’로 했다”며 “대상을 가장 잘 설명하려면 끝없는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