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당국이 대출심사를 엄격히 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화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금융당국이 발끈하면서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구조조정발 경기 충격이 예상보다 클 경우 경기에 취약한 제2금융권 비주택담보대출부터 적신호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가을 분양시장이 본격화하면 최근 주춤해진 집단대출에도 다시 한 번 불이 댕겨질 수 있다. 당장 오는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2·4분기 가계신용’은 1,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숫자로 확인하면서 ‘가계부채발 위기’ 논란을 증폭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 5월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262조8,214억원으로 전월 대비 14.1%(3조5,554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7.9%인 예금은행 가계대출 증가 폭보다 두 배나 높다. 비은행 가계대출의 월별 증가세는 지난해 6~8월까지만 해도 7%대로 은행과 엇비슷했다. 하지만 11월에 9%로 뛰었고 올해 1월 들어 10%대로 올라서는가 싶더니 금융당국이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가동하며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죄기 시작한 2월부터 증가 속도가 더욱 가팔라졌다. 반면 8% 중반이던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는 3월부터 7%대로 내려앉았다. 금융당국의 대출 죄기로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가계는 줄었지만 제2금융권 대출이 느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은행 문턱을 높이자 2금융권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2금융권 대출광고를 주민이 읽고 있다. /연합뉴스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지난 1·4분기 대부업체·증권사·자산유동화회사 등 기타 금융중개업의 가계대출은 123조3,37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4조9,128억원(39.5%) 증가했다. 상호저축은행 가계대출은 같은 기간 32.8% 늘었다. 이 밖에 △신용협동조합 23.2% △새마을금고 11.4% △여신전문기관 10.8% △농협 등 상호금융 9.4% △보험기관 9.1% 등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시중은행 증가세(7.9%)를 훌쩍 앞질렀다. 이자 부담이 높은 2금융권에 대한 대출 집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 상반기 가계·기업 등이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대부업체 제외)에서 빌린 돈은 671조6,752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4조8,909억원(5.5%) 늘었다. 이는 한은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3년 이후 상반기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이들 제2금융권 대출의 경우에는 개인신용대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비은행 예금취금기관의 경우 5월 주담대 잔액은 105조3,278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8% 증가했다.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 잔액은 157조4,96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7% 늘어 증가 폭이 더 컸다.
한편 정부의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집단대출 증가세 역시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 1·4분기 집단대출 규모는 115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5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 한 해 전체 증가분(8조7,000억원)의 60.9%에 달하는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7월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집단대출 중도금 대출 보증을 수도권·광역시 6억원, 지방 3억원으로 각각 제한했지만 집단대출 증가세는 여전하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분양 추이나 집단대출 만기 등을 고려하면 집단대출의 증가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