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당정이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3~4% 늘리기로 합의한데다 대내외 경기 상황도 재정을 긴축보다는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당정회의에서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정을 확장 운용할 것”이라며 슈퍼예산을 통한 경기 살리기에 무게를 실었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6월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안 총지출 규모는 398조1,000억원으로 올해 예산 대비 11조7,000억원(3.0%) 증가했다. 예산 요구액 증가율 기준으로는 2005년 이후 가장 낮다. 예산 요구액 증가율이 줄어든 것은 전체 총량 자체가 커진데다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재량지출을 의무적으로 10%씩 줄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재량지출 삭감을 통해 마련된 재원을 일자리 확충,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해 예산의 확장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각 부처 요구안을 보면 분야별 내년 예산안의 증감을 유추할 수 있다. 올해보다 예산이 늘어나는 분야는 △보건·복지·고용(5.3%) △국방(5.3%) △문화·체육·관광(5.8%) 등이다. 반면 줄어드는 분야는 △SOC(-15.4%) △산업·중기·에너지(-5.5%) △환경(-4.7%) 등이다. 당정 협의에서도 청년 일자리와 저출산·고령화 대비를 위해 예산을 증액하겠고 밝혔지만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사상 처음으로 130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이미 부처 요구안에서도 올해보다 6조6,000억원이 늘어나 130조원을 넘었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에서 빠졌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는 부처 요구안에서도 15.4%가 줄었다.
내년 예산안을 400조원 이상으로 편성하면 국가채무 비율이 사상 처음 40%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평균 112.7%(2015년 기준)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큰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제출을 앞두고 있는 ‘재정건전화법’에서도 국가채무 상한선을 GDP 대비 45%까지 허용하고 있다.
재정을 뒷받침할 세수 여건도 슈퍼예산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3년 연속 세수펑크에서 벗어나 지난해 플러스로 돌아선 데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조원(국세 기준)이 더 걷혔다. 물론 하반기 들어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대내외 여건의 영향으로 경기가 얼어붙으면 세수 여건도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채를 찍지 않고 추가 세수로 11조원대 추경을 편성할 만큼 아직 여유를 보이고 있다.
실제 올해는 세수가 잘 걷히면서 국세 수입이 본예산 기준 222조9,000억원에서 추경 기준 232조7,000억원으로 9조8,000억원 급증했다. 이에 따라 국세 수입에 기금수입 등을 합친 총수입도 391조2,000억원에서 401조원이 됐다. 나라살림에 사용할 수 있는 실탄이 그만큼 더 늘어난 것이다.
내년도 총수입 역시 비슷한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경제 성장에 따른 국세 수입 증가분을 의미하는 국세 탄성치를 1.0으로 보고 있다. 여기다 정부의 내년도 경상 성장률 전망치인 4.1%를 반영해 국세 수입 증가분을 계산해보면 올해보다 9조5,000억원이 늘어난다. 이를 고려한 내년도 총수입은 최소 4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