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에서 열린 그리스 선엔터프라이즈 사의 원유운반선 명명식에서 최길선 회장(오른쪽부터)과 정기선 총괄부문장이 조지 리바노스 회장과 아들 스타브로스 리바노스씨를 안내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에 따른 선박 발주량 감소로 조선 업황 부진이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현대가(家) 3세인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부문 총괄부문장(전무)은 “조선 시황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강점을 최대한 살려 현 상황을 돌파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정 전무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으로 현대중공업·미포조선·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 차원의 선박 영업 최일선 조직인 선박·해양영업부문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그만큼 선박 발주를 내는 해외 선주들의 동향과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있다.
정 전무는 지난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해외 선주들의 최근 발주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새롭게 선박 발주가 나올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현재의 부진한 업황이 단기간에 반전되기는 어렵다고 언급했다.
통화 시점이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모두 휴가를 떠난 2주간의 집중 휴가 기간이었음에도 사무실로 출근해 업무를 봤을 정도로 정 전무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정 전무의 업황 진단은 최근 그리스 선사들의 발주가 이어진다는 점 등을 들어 시황 개선의 기미가 보인다는 시장 일부 진단과는 다소 온도 차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통상 그리스 선사들의 발주 움직임은 조선 시황의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그리스 선사들은 선가(船價)가 바닥을 찍었다고 판단했을 때 선박 매매와 신규 발주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대표적인 집단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신규 선박 발주 재개를 업황 개선의 신호탄으로 보는 이유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725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의 발주량 2,282만CGT 대비 3분의1 토막이 났다.
이처럼 선박 발주가 줄어드는 와중에 기존 수주분에 대해서는 속속 인도가 이뤄지고 있어 현대중공업은 내년 하반기면 일부 도크(선박 건조대)의 가동이 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해운·조선 시황 전문 분석 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7월 현재 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이 확보한 수주잔량은 927만CGT, 253척이다.
정 전무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대중공업이 살릴 수 있는 (강점) 부분은 살려 나가겠다”면서 부진한 경영 환경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 전무는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와의 합작 사업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중공업은 아람코와 합작해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 선박용 엔진 공장과 조선소를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아람코와의 전략적 관계 구축 양해각서(MOU) 체결도 정 전무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 건조는 물론 선박용 엔진과 육상·해상 플랜트 사업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은 아람코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사업 파트너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아람코와의 합작 조선소 설립은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발주되는 선박에 대한 수주 우선권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안정적인 선박 수주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아람코는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15%를 공급할 정도로 석유 운송과 플랜트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정 전무는 아람코와의 합작 추진과 관련, “아직 공개적으로 진행 상황을 밝힐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신중했다.
하지만 최근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과 정 전무를 비롯한 현대중공업 최고경영진이 면담하는 등 합작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