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골프, 엘리베이터에 갇히더니 쾌조의 첫 라운드...이래저래 금빛 예감

여자골퍼들의 아주 특별한 올림픽

여자골프 대표팀의 김세영(오른쪽)이 18일(한국시간) 리우 올림픽 1라운드를 마친 뒤 같은 조로 경기한 태국의 에리야 쭈타누깐과 포옹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골프 대표팀은 지난 주말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올림픽 골프코스 인근의 숙소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린 것. 선수들과 대표팀 관계자들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30~40분이나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양희영(27·PNS창호)은 18일(한국시간) 기자에게 당시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춘 것도 무서운데 슬금슬금 반층 정도 내려가더라고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데 그땐 정말, 어휴.”

앞서 남자테니스 후안 마르틴 델포트로(아르헨티나)의 사연을 떠올리면 여자골프 대표팀이 겪은 사고는 ‘액땜’으로 쳐도 좋을 것 같다. 델포트로는 지난 8일 선수촌 엘리베이터에 40여분간 고립됐다가 겨우 빠져나와 치른 경기에서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잡는 이변을 일으켰다.

여자골프 대표팀의 출발도 예사롭지 않다. 박인비(28·KB금융그룹)와 김세영(23·미래에셋)이 18일 1라운드에서 5언더파 66타로 1타 차 공동 2위에 오르는 등 이튿날 2라운드까지 금메달 기대를 이어갔다. 첫날 각각 1언더파, 2오버파를 적은 전인지(22·하이트진로)와 양희영에게도 기회는 있다.


손가락 부상 탓에 사실상 두달간 쉬었던 박인비는 “부상을 겪으면서 저 나름대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올림픽도 나오는 게 맞는지 고민 끝에 나왔다”며 “올림픽이 제 마지막 대회라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같은 조로 경기한 저리나 필러(미국)가 “박인비에게 퍼트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박인비는 전성기에 가까운 기량을 쏟아냈다.

김세영은 강력한 금메달 후보인 에리야 쭈타누깐(태국)과 한 조로 1라운드를 치렀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4승으로 리디아 고(뉴질랜드)와 함께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있는 쭈타누깐은 3번 우드로도 270야드를 보내는 괴력의 장타자다. 김세영은 “쭈타누깐이 우드로 친 샷과 제 드라이버 샷이 비슷하게 나가더라”면서 “저도 나름 장타자라고 생각하는데 쭈타누깐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플레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선수들은 자신들이 116년만에 다시 열리는 올림픽 여자골프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고 했다. 양희영은 “1번홀 선수 소개 때 카메라가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오더라. 같은 조 선수들끼리 나란히 서서 인사하는 것도 일반 대회와 달랐다”고 돌아봤다. 선수촌에서 이틀을 묵고 대표팀 숙소로 옮긴 전인지는 “선수촌에서 손연재·이용대 선수를 만났는데 서로 신기해하는 상황이 재밌었다. 첫 올림픽 출전이라 그런지 모든 게 신기하고 즐겁다”고 했다.

첫날 6언더파 65타를 친 쭈타누깐은 첫홀 티샷 직전까지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흥얼거려 눈길을 끌었다. 쭈타누깐은 “경기 직전까지 음악을 듣는 것과 샷을 하기 전 일부러 미소를 짓는 것은 평정심을 찾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라고 설명했다.

선수촌에 묵는 쭈타누깐과 달리 한국선수 전원은 촌외 생활을 하고 있다. 박세리와 양희영·전인지가 같은 숙소에 머물고, 김세영은 아버지·오빠와 함께, 박인비는 남편이자 코치인 남기협씨와 각각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리우데자네이루=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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