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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 단궁에 보면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2016년의 한반도를 비춰볼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가 수레를 타고 태산을 지나다가 어디선가 나는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공자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로더러 깊은 산속에서 왜 울고 있는지 사연을 알아보게 했다. 자로가 여인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여인은 산속에 살다가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남편도 같은 화를 당했다. 근래에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환(虎患)은 분명 위로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인의 슬픔은 자초한 측면이 있다. 깊은 산속에 사니 호랑이의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시아버님의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라도 도시에 나가 살았더라면 남편과 자식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공자는 여인에게 왜 산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산속에는 가정(苛政·몹시 모질고 혹독한 정치)이 없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결국 세금과 부역 등 가혹한 정치의 고통이 사나운 호랑이의 위험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사람은 물건을 사고팔 때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전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2016년 여름의 전력 사용은 소비 활동이 아니라 질병과 사망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생존 훈련이자 치료 행위다. 그간 에어컨 없이 살던 사람도 내년에 에어컨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더위의 영향은 치명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요금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면, 이 현상은 전기요금이 사나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21세기판 가정맹어호의 사례가 된다. 개인의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의 우려, 한국전력공사의 수익 구조 악화 등을 이유로 혹서와 혹한의 전기요금 체제 개선을 임시방편으로만 접근한다면 정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망각하는 일이 된다. 누진제 개선은 단순히 요금의 완화 여부에 한정되지 않고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큰 틀에서 논의돼야 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