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고효율 가전제품 판매 활성화 정책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주저하게 만든 이유라고 지적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난 6월 기획재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효율 1등급인 가전제품을 사면 구매가격의 10%를 소비자에게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는데요.
환급 대상 품목은 에너지 소비효율 1등급인 40인치 이하 TV, 에어컨, 일반·김치 냉장고, 공기청정기 입니다. 단, 구매 시기가 7월 1일부터 9월 말까지인 제품만 가능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요는 에어컨에 해당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정부가 이 정책을 발표했던 6월 말에는 지금 같은 폭염과 그 보다 더 했던 국민들의 분노를 예측할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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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8월 20일이니 정책을 시행 기간의 절반 이상 지났는데요. 산업자원통상부에 슬쩍 물어보니 신청 건수가 괜찮은 편이지만 50만 건에는 못 미친다고 하는군요. 자동차 개소세 인하 때는 현대기아차 등 자동차 회사들이 정부 정책에 맞춰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벌인 덕이 컸습니다. 하지만 가전제품은 자동차보다 가격이 낮아서 할인 여지가 적은 데다가 대부분 해외 공장에서 조립하기 때문에 섣불리 가격을 깎았다가는 통상 마찰 우려까지 있다고 하네요.
아무튼 정부가 애면글면 바라보는 와중에 터진 누진제 개편은 고효율 가전제품 판매에는 악재가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기료가 줄어들면 소비자 입장에서 기껏해야 20만 원 돌려주는 고효율 가전제품 환급을 택할 가능성은 낮아질 테니 말입니다. 기재부도 이 점을 우려해서 여당과 논의 초반에 누진제 개편이 어렵다는 취지로 보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정 간 논의하던 시점이 8월 초로 에어컨을 한창 구매할 시기는 지났고 무엇보다 민심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여당은 기재부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이 보급되어야 장기적으로 전력 부족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백 번 옳습니다. 그러나 당장 치솟는 더위에 하루 세 시간만 에어컨을 틀라는 정부의 지적에 반감을 안 가질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양복 입고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걸 보니 추운 모양인데 보일러 놔 드려야겠다” 양복 재킷을 입은 채 웃고 있는 정부와 여당 정치인을 향한 누리꾼의 댓글입니다. 이 댓글이 지적하고 싶싶은 것은 관료 머릿속에 있는 큰 그림도 현장을 돌아보면서 그려야 된다는 질타 아닐까요.
/세종=임세원 박홍용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