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인터넷을 통한 은행거래 업무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99년 여름이다. 2003년 가을, 이동통신사를 중심으로 휴대폰 집적회로와 가상머신 기반 모바일뱅킹이 순차적으로 소개됐고 7년에 걸쳐 사용자 1,000만명을 확보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출시되며 시장이 급속도로 재편됐다. 한국은행이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뱅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9년 4·4분기부터 2년이 채 되기 전에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었고 2015년 3·4분기에 이르러서는 6,000만명에 이르러 명실공히 전 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는 8월30일, 금융결제원은 16개 시중은행의 금융 서비스를 표준화된 프로그램 명령어(Application Program Interface·API)로 처리할 수 있는 핀테크 오픈플랫폼을 출범시킨다. 인터넷 뱅킹이 시작된 지 17년 만이다. 단일 프로그램으로 복수 은행의 잔액조회, 거래내역조회, 계좌실명조회, 그리고 입출금 이체를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함의는 오픈플랫폼이 핀테크 산업의 소프트웨어 인프라로서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부가 서비스 확산은 범용적인 인프라 구축에 후행해왔다.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 보급되고 나서야 모바일 메신저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성장한 것을 되짚어보자. 따라서 핀테크 서비스가 널리 쓰이는 것은 기실 해당 산업의 모든 인프라가 갖춰진 후일 수밖에 없다. 특히 표준화된 프로그램 명령어로 여러 은행 전산망을 이용할 수 있는 오픈플랫폼은, 자원이 제한된 스타트업에 가뭄의 단비다.
영국 정부는 런던 소재 테크시티에만 8억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해 핀테크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산업 육성에 앞장서서, 지난해 한 해 해당 산업에서만 6만개가 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민간기업이 벤처사업 육성에 앞장서는 것이 보통인 영미권에서 이러한 정부 주도 정책은 보기 드문 일이다. 금융산업은 전통적으로 관리·감독이 철저하므로 민간만의 노력으로 혁신을 가로막는 법적 실타래를 풀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물론 정부 주도 개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핀테크 오픈플랫폼 출범의 경우, 금융기관 사이 이견을 조율하고 관련 규제의 틀을 바꾸는 것이 필요했기에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전혀 아니었다. 이런 인프라 확립으로 수혜를 보는 것은 금융소비자이며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혁신에 베팅하는 스타트업이고, 나아가 아시아 핀테크 허브에 도전하는 우리나라다. 오랜만에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반가운 까닭이다.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