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 500 ¦ 아웃사이더 넷플릭스의 반란

넷플릭스의 테드 새런도스 CCO(왼쪽)가 베벌리힐스 본사 사무실에서 리드 헤이스팅스 CEO와 함께 앉아 있다. 창문에 적힌 글귀는 ‘대부 3’의 (오타가 있는) 인용구다.
할리우드가 선호하느냐 여부와 관계 없이,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콘텐츠가 TV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 방식을 바꾸고 있다.

넷플릭스 기업 프로파일
RANK 379
매출:
68억 달러
이익: 1억 2,260만 달러
직원 수: 3,700명
총 주주 수익률 (2005~2015년 연평균): 40.3%

금요일 오후 4시 30분, 테드 새런도스 Ted Sarandos는 베벌리힐스의 집무실 내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11시간이나 탄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기 있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넷플릭스의 최고콘텐츠책임자(chief content officer)인 그는 CEO 리드 헤이스팅스 Reed Hastings,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 Gerard Depardieu와 함께 넷플릭스 최초의 프랑스어 8부작 드라마 ‘마르세유 Marseille’의 시사회에 참석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지금은 후덕한 체격이지만, 한때 대표적인 미남 배우였던 드파르디외는 그 드라마에서 일생일대의 선거전에 뛰어든 나이 든 시장 역할을 맡았다. 5월 5일 공개된 ‘마르세유’에 대한 프랑스 평론가들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Le Monde’ 의 피에르 세리시에 Pierre Serisier는 이 작품에 대해 ‘점잖게 표현하면 산업재해’라고 운을 뗀 후, ‘속되게 말하면 소 배설물 수준’이라고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새런도스는 세리시에의 혹평에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르세유’의 성공 여부는 넷플릭스(포춘 500대 기업 중 379위)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넷플릭스는 닐슨 Nielsen 시청률 조사나 시청자 수 집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런도스가 진짜 우려하는 것은 ‘마르세유’가 과연 넷플릭스 가입자 수를 늘려 줄 것인지 여부다. 그 시청자가 말리(아프리카 불어권 시청자들도 넷플릭스를 볼 수 있다)의 프랑스 문화 팬인지, 진짜 마르세유 시민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숫자다. 새런도스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세계적 성공의 비결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넷플릭스 관계자가 스토리텔링을 논하는 모습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할리우드에서 넷플릭스보다 영향력이 큰 존재는 드물 것이다. 넷플릭스는 광대역 통신망 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활용, 최고 기술기업의 반열(실적 기준)에 올랐다. 넷플릭스 주가는 작년 한 해 134% 상승해 포춘 500대 기업 중 1위를 기록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올해는 텔레비전과 영화 부문에 50억 달러를 쏟아 부어 경쟁사들을 가볍게 압도하기도 했다. 기존 사업 방식을 재검토하라고 경쟁사들을 압박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업 전략이었다.

시청자 수 비공개는 시청률을 기초로 하는 방송업계의 사업모델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행동이었다. 파일럿 작품을 요구하지 않고 1~2시즌을 통째로 구매하는 넷플릭스의 파격적인 방식은 기존 작가, 배우, 프로듀서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 한 시즌을 한 번에, 그것도 광고 없는 무료 스트리밍으로 감상한 시청자들은 이제 ‘몰아 보기’에 익숙해졌다. 그 결과 일주일에 한 편씩 광고와 함께 방영되는 드라마에 대한 인내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TV의 현재 사업 방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넷플릭스는 극장가에도 진출, 기존 제작사들을 제치고 여러 대작 프로젝트를 확보하고 있다. 일례로, 올해는 윌 스미스 주연의 경찰 스릴러 영화 ‘브라이트 Bright’를 9,000만 달러에 확보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넷플릭스가 신작영화를 극장에서 독점 개봉하는 문화에 맞서 로비를 벌여왔다는 것이다. 미국극장주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Theatre Owners · NATO)의 존 피시언 John Fithian CEO가 최근 한 회의에 참석해 넷플릭스를 ’영화업계의 심각한 위협‘이라 일컬었을 정도다.

비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포스 (*역주: 스타워즈 시리즈의 개념으로 기(氣)와 유사한 힘 는 넷플릭스와 함께하고 있는 듯하다(5월에는 루카스필름의 모회사 디즈니와 독점 배급계약도 성사시켰다). 지난 4월 넷플릭스는 가입자 수가 작년보다 35% 증가해 8,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시장을 독점하는 동안 방송프로그램 및 영화 서비스를 하는 다른 매체의 인기는 줄고 있다. 2013년 4분기 케이블·위성TV·통신사의 총 신규 고객 수는 7만 9,000명이었지만, 2015년 4분기에는 해당 매체 가입자 수가 4만 9,000명이나 줄어들었다. TV 시청자 수는 감소 추세이며, 극장 관객 수도 지난해 약간의 반등이 있었지만 대체로 정체 상태에 빠져있다. 작년 한 해 북미 인구의 약 3분의 1은 한 번도 극장을 찾지 않았으며, 10%는 단 한 번만 극장에서 영화 관람을 했다.


새런도스와 만난 영화계 명사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애덤 샌들러(넷플릭스 영화 ‘두오버’ 시사회장에서), 넷플릭스의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의 주연인 이드리스 엘바(인디펜던트 스피리트 상 시상식장에서), 코미디언 겸 넷플릭스 토크쇼 진행자인 첼시 핸들러(ICG 광고인상 시상식장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프로듀서 젠지 코언(왼쪽)과 주연 테일러 실링, ‘하우스 오브 카드’ 주연 케빈 스페이시(에미상 넷플릭스 파티에서), 헤이스팅스 CEO와 제라르 드파르디외(드라마 ‘마르세유’의
넷플릭스는 이런 흐름의 원인이라기보단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업계가 실망스런 실적을 넷플릭스 탓으로 돌린다 해도 경영진은 개의치 않고 있다. 현재의 변화가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 개토스 Los Gatos 본사에서 포춘과의 인터뷰에 응한 CEO 헤이스팅스는 “단순히 기존 사업 방식에 변화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개선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포춘 500대 기업 중 379위에 오른 넷플릭스가 기존 체제의 근간을 위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헤이스팅스는 “블록버스터 Blockbuster도 한때는 포춘 500대 기업이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넷플릭스의 붉은 DVD 배송용 봉투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 대여 산업의 지배자가 대여점 체인 블록버스터-이미 파산했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볍게 넘길 말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1위를 향해 계속 정진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생태계 파괴에 나서고 있지만, 선량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변신하려는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반드시 공존해야 할 상대가 할리우드라는 사실도 변함이 없다.

새런도스는 “‘프레너미 frenemy (*역주: 친구이자 적) 라는 단어를 이 업계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처음 말해 준 사람은 CBS의 CEO 레스 문브스 Les Moonves였던 걸로 기억한다.”

넷플릭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CBS의 CEO 이름을 가볍게 언급할 정도의 위치에 올라있다. ‘프레너미’라는 칭호도 마찬가지다. 새런도스는 지난 몇 년간 제작사 및 방송사를 상대로 한 저작권 사용 허가 협상을 담당해 콘텐츠 제작자들의 수익 증대에 기여했다. 이후 콘텐츠 제작자들과 경쟁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2013년부터 새런도스의 지휘 아래 티나 페이 Tina Fey, 첼시 핸들러 Chelsea Handler, 케빈 스페이시 Kevin Spacey 같은 유명 배우 및 방송인들을 섭외해 인터넷 스트리밍용 방송 콘텐츠 자체 제작에도 참여해왔다.

이 과정을 통해 새런도스의 인지도는 수많은 찬사를 받는 CEO 헤이스팅스와 동등한 수준으로 높아졌다(구글에서 ‘리드 헤이스팅스와 테드 새런도스’를 검색하면, 두 사람이 영화 시사회와 언론 행사에 함께 참여한 사진을 엄청나게 많이 볼 수 있다). 창업의 세계에 들어서기 전, 헤이스팅스(55)는 컴퓨터공학 전공 대학원생이었다.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의 연체료로 40달러를 문 사건이 계기가 돼 1990년대 후반 넷플릭스를 창업했다. 당시 넷플릭스는 DVD 우편대여업체였다. 애리조나 주 출신의 새런도스(52)는 창업 초기였던 2000년 콘텐츠 담당 부사장으로 회사에 합류했다. 그는 대학 중퇴 후 비디오 대여점 체인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야심 찬 인물이었다.

헤이스팅스는 새런도스와의 업무 관계가 ”물 흐르듯 매끄럽고 막힘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두 사람의 평소 행동과 기질에선 실리콘밸리와 LA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개별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모두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헤이스팅스가 덥수룩한 염소수염에 운동화 차림이었던 것과는 달리, 깔끔하게 면도한 새런도스는 간편한 단화를 신고 있었다. 헤이스팅스는 본사의 공개된 장소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엔지니어와 다른 직원들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반면 새런도스는 널찍한 집무실 안에서 비공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베벌리힐스 본사 내에 있는 새런도스의 휘하 직원은 약 600명 정도다. 넷플릭스는 2017년까지 할리우드의 업무용 건물로 확장 이전해 본사 부지를 두 배 이상으로 넓힐 계획이다. 2006년 그는 헤이스팅스의 승인을 받아 인디영화 판권매입과 DVD 배급 프로젝트인 레드 엔벨로프 엔터테인먼트 Red Envelope Entertainment를 시작했다. 이 부서의 사업은 실패로 끝나 2년 후 문을 닫았다. 한 가지 패인은 DVD 판매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 법이었다. 넷플릭스가 (예를 들어) 안락의자를 구매하러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의 영화(포춘 기자들은 이 영화 ‘퍼피 체어 The Puffy Chair’ 를 보지 않았다) 구입에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다른 회사들은 이를 무시하고 DVD를 판매할 수 있었다.


미디어의 두 지배자 - 새런도스와 헤이스팅스는 세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세간의 이목을 끄는 드라마와 영화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한 가입자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다.
2011년 넷플릭스는 4년 간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약 2,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새런도스는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섰고, 예전보다 훨씬 대담한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1990년작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전무했던 영국 미니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House of Cards’의 미국 판권을 약 1억 달러에 사들였다. 헤이스팅스 본인의 표현을 빌면, 이 결정에서 그가 한 역할은 일을 막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이 드라마는 흥행과 평가 측면에서 두 마리 토끼 몰이에 성공했다. ‘변화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살인도 불사하는 화려한 언변의 정치인 프랭크 언더우드 Frank Underwood(케빈 스페이시 분)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다. 현재는 큰 성공 끝에 미국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었지만(2017년 초 5번째 시즌이 방영 예정이다), 첫 방영 당시만해도 이 드라마는 매우 혁명적이었다. 넷플릭스는 결과물을 보지도 않고 주연 스페이시와 감독 데이비드 핀처 David Fincher 등 제작자들과 두 시즌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파일럿 드라마나 테스트 마케팅용 음악과 춤 등을 전혀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런 초기 단계는 제작자들에겐 골칫거리지만, 방송사 입장에선 수익성에 대해 확신이 설 때까지 새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실험하면서 재정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간이다.

넷플릭스는 이 사업 모델을 간단히 포기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 계약에서 기존 방송사들과는 달리 창작과 관련된 통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미국 유명 에이전시인 창작예술인협회(Creative Artists Agency · CAA) 소속으로 케빈 스페이시의 에이전트인 맷 델피아노 Matt DelPiano는 “그런 계약은 전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창작자 입장에선 ‘생각조차 할 필요 없는’ 제안이었다. 이 밖에도 넷플릭스는 시즌 1 전편을 동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몰아보는 드라마’의 탄생이었다. 이 방식이 성공을 거두자 다른 방송사는 물론, 아마존,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훌루 Hulu 같은 후발주자들도 훗날 이 대열에 동참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넷플릭스의 여러 굵직한 자체제작 콘텐츠 중 신호탄일 뿐이었다. 방송사 고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의 과감한 계약 탓에 최고 창작자들을 데려오는 비용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시청률이 아무리 높아도 시즌당 제작비 5,000만 달러를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유료 시청 덕분에 이런 문제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넷플릭스의 기본 요금제는 월 8달러 혹은 연 96달러다. 여기에 수천만을 곱한 매출은 넷플릭스가 고품질 드라마를 계속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새런도스와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차기작 선정 기준에 대해 함구했다. 가입자들의 시청 방식 관련 데이터를 프로그램 제작에 반영한다고만 밝혔다. 무엇보다도 새런도스의 말처럼 “가입자 수를 늘리려면 훌륭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제작하는 게 필수적”이다. 최근 통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는 프로그램 자체 제작을 시작한 2013년 이래 145%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광고가 없는 이유도 정액 요금제 때문이다. 새런도스와 헤이스팅스는 광고가 없는 이상 시청자 수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경쟁사 입장에선 팔짝 뛸 노릇이다. 올 1월 열린 TV비평가 협회(Television Critics Association) 행사에서 방송사 경영자들은 넷플릭스의 비밀주의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FX 네트워크 FX Networks의 존 랜드그래프 John Landgraf CEO는 정보 비공개 방침이 “터무니없다(ridiculous)”고 주장하면서, 기술기업들이 경쟁의 공정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방송사들이 화가 난 데에도 일리는 있다. 작년 미국의 비(非)스트리밍 TV 시청자 수는 시청시간 기준 약 3% 하락했다. 미디어전문 리서치업체 모펏네이선슨 MoffettNathanson의 마이클 네이선슨 Michael Nathanson은 감소분의 절반 정도는 넷플릭스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그는 현재 미국 전체 TV 시청에서 넷플릭스의 비중은 6%이며 2020년까진 이 비율이 14%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은 방송사가 광고주와 협상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 넷플릭스 관련 통계가 비공개인 탓에 자사 콘텐츠가 해당 분야 내 최상위권이라고 입증하기 어렵다. 넷플릭스의 임원들은 별다른 근거 없이 자사가 기존 방송사들을 넘어섰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새런도스는 마약 밀매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나르코스 Narcos’의 시청자 수가 케이블 방송사 HBO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을 넘어섰다고 밝힌 바 있다.

새런도스는 방송사들을 위해 수치를 공개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넷플릭스 드라마가 기존 케이블이나 공중파를 시청률로 압도했다고 발표한다면 우리 콘텐츠 공급자들이 그리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넷플릭스가 TV를 죽인다고 아우성을 칠 테니까. 그 반대로 발표하면 넷플릭스가 망했다고 아우성일 테고 말이다.”

넷플릭스와 출연 계약을 한 유명 배우들(그 면면이 화려하다)조차도 출연작의 흥행 정도를 알 수 없다. 만약 윌 스미스가 출연작의 시청자 수를 알려달라고 요구한다면? 새런도스는 스스로에게 이런 가정을 한 후 희미한 웃음을 지으면 자문자답을 했다. “안 되죠.”

그러나 윌 스미스는 별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장편 영화 제작에 투자를 시작해 두둑한 출연료를 받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스미스가 주연한 ‘브라이트’는 넷플릭스 자체 제작 영화 중 가장 과감한 투자가 이뤄진 작품이다. 9,000만 달러로 알려진 제작비는 과거 NBC 시트콤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에어 Fresh Prince of Bel-Air‘의 주연이었던 스미스와 ‘퓨리 Fury’ ‘트레이닝 데이 Training Day’ 등으로 유명한 각본가 겸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 David Ayer에게도 적지 않은 액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헤이스팅스와 새런도스는 넷플릭스가 시리즈화 할 수 있는 고급 독점 장편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브라이트 2’의 제작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브라이트’는 넷플릭스가 올해 투자한 여러 작품 중 하나일 뿐이다. 넷플릭스는 최소 드라마 60편, 다큐멘터리 10여 편, 장편영화 8편을 제작하는데 올해에만 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넷플릭스가 작년 한 해 총 매출 68억 달러를 기록했고 자체 콘텐츠 제작에 30억 달러를 지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공격적인 행보다(제작비 조달을 위해 넷플릭스는 장기 부채를 늘리면서까지 지난해 15억 달러를 투자 받았다).

넷플릭스는 ‘브라이트’에 이어 브래드 피트 주연의 전쟁 풍자극과 피트의 아내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으로 나선 캄보디아 인권운동가 관련 영화의 판권을 매입하기도 했다. 브랜젤리나 급의 배우들을 끌어들일 만큼 넷플릭스의 매력이 커진 데에는 물론 가입자 수의 영향도 있지만, 넷플릭스의 출연료 계산 방식이 비교적 단순해 흥행 리스크를 덜 떠안을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최상급의 배우나 감독은 일반적으로 최종 수익(back end)의 일부를 출연료로 받는다. 미국 극장 매출, 전 세계 배급, 방영권 판매 등을 통해 제작사가 최종적으로 거둔 수익을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 방식이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상당한 위험이 돌아가는 구조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유료 가입자들 덕분에 거액의 출연료를 선지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할리우드 입장에선 넷플릭스가 이 영화들을 상영관에 영영 걸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속 쓰릴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는 신작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기간(theatrical window)을 놓고 영화업계와 오랫동안 줄다리기를 벌여왔다. 넷플릭스의 등장 전까지만 해도 영화업계에선 극장 없는 영화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극장주연합의 CEO 피시언은 “영화관에 걸릴 영화는 가정 상영용 영화와 다르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가정과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는 영화를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도 극장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며 극장주들 못지않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극장의 독점개봉 기간이 짧아지거나, 아예 없어진다면 넷플릭스 가입자들은 신작영화를 더욱 빠르게 볼 수 있다. 넷플릭스가 다수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블록버스터형 영화를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독점 공개한다면, 제작사들도 자체 제작 영화에 같은 방식을 도입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새런도스는 독점 개봉 기간 축소가 극장업계의 쇠퇴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는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집에서도 다 해 먹을 수 있다”며 “그럼에도 사람들은 외식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의 부상 등으로 인해 영화 시장에서 ‘집밥’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지난 1월 넷플릭스는 진출 국가 수가 1년 전 60개국에서 190개국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 전체 이용자의 42%는 미국 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기대만큼 성장이 빠르지는 못했던 탓에 최근 주가는 다소 ‘요요 현상’을 겪어왔다. 하지만 일부 애널리스트는 2020년까지 가입자 수를 현재의 두 배로 늘린다는 넷플릭스의 목표는 여전히 달성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위력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약한 이유는 세계 시장 진출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확실한 기반을 구축하면 지금을 떠올리며 ‘그 때는 8,100만 명밖에 안 되는 구멍가게였지’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장하는 넷플릭스에게 가장 큰 관건은 불신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경쟁자들과의 협업 능력이다. 최근 성사시킨 계약 한 건을 보면 전망이 나쁘지는 않다. 넷플릭스는 지난 5월 미국의 스페인어 방송채널 유니비전 Univision과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엘 차포’ 구스만 Joaquin ”El Chapo“ Guzman에 대한 드라마 시리즈를 공동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 밖에도 넷플릭스 시리즈인 ’나르코스‘와 ’클럽 데 쿠에르보스 Club de Cuervos‘의 유니비전 방영을 합의했다. 넷플릭스가 세계시장 정복을 위해 ‘기존 TV’에도 진출할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자체제작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업계에 드러날 것이다. 세계의 비즈니스가 충돌하고 있다고? 넷플릭스에겐 아직 시작일 뿐이다.


[넷플릭스의 새 친구들]
디즈니

넷플릭스는 디즈니 영화(마블, 루카스필름, 픽사가 저작권을 보유한 수많은 흥행작 포함)를 9월부터 독점 스트리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고 지난 5월 말 발표했다.

윌 스미스
넷플릭스는 지난 3월 주요 제작사들을 제치고 경찰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 ‘브라이트’의 판권을 9.000만 달러에 따냈다. 스미스의 출연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체 비용의 절반 정도가 ‘인건비’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유니비전
넷플릭스는 ‘나르코스’와 ‘클럽 데 쿠에르보스’를 미국의 스페인어 방송채널인 유니비전에 공급하는 데 합의했다.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에 대한 드라마도 공동 제작할 예정이다(구스만을 만난 것으로 유명한 숀 펜은 이 드라마에 참여하지 않는다).


[넷플릭스와 HBO의 투자 대비 성적]
평단의 반응과 흥행 양쪽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 미국의 케이블채널 HBO는 오랫동안 넷플릭스가 넘어야 할 산으로 여겨져 왔다. 몇 가지 기준에서 살펴본 결과, 넷플릭스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015년 에미상 후보작 수
넷플릭스:
34
HBO: 126

2015년 에미상 수상작 수
넷플릭스:
4
HBO: 43

2016년 자체 제작 시리즈 방영 시간
넷플릭스:
600시간
HBO: 600시간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