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정주영? '빨리 빨리 헨리'



‘총가격 1억 달러, 수송함 60척.’ 1940년 말, 미국 정부에 영국의 다급한 요청이 들어왔다. 대형 수송함을 척당 167만 달러씩 60척을 구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의 조선소들은 밤낮 없이 각종 수송함을 건조해 해상운송 작전에 투입했으나 격침되는 수송함이 훨씬 많았다. 독일 잠수함(U-보트)의 격침과 영국의 신규 건조 비율이 약 3 대 1. 자칫 수송함대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 영국이 미국에 구원 요청을 보낸 것이다.

미국은 고민에 빠졌다. 공짜가 아니라 정당한 가격을 제시한 상업구매라는 점은 좋았지만 손이 없었다. 모든 조선소가 제 2차 세계대전을 맞아 100% 가동되는 마당에 미국은 새로운 조선소에서 영국 수출용 수송함을 건조하는 계획을 세웠다. 낙점된 업자는 헨리 카이저((Henry Kaiser). 동부에 밀집된 조선업계는 미심쩍게 여겼다. 카이저는 당시까지는 변방으로 치던 서부의 건설업자였기 때문이다. 배를 만들어 본 경험도 전혀 없었다.

선박과 관련된 일이라고는 취미인 모터 보트 경주 밖에 없었던 헨리에게 동맹국의 전쟁 승패가 걸릴 수도 있는 중임을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보다 빠르게 일을 해내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영국으로 보낼 수송함 건조에 뛰어들 때 그의 나이가 52세. 자수성가한 중년의 건설업자 헨리의 인생 역정은 속도전과 위기 극복 그 자체였다. 미국은 헨리의 명성이 건함에서도 발휘되기를 믿었던 것이다.

1882년 뉴욕의 독일계 농부 겸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3세부터 잡화점 직원, 보따리 의류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사진관에 조수로 들어가 20세에는 자신의 사진관을 차렸다. 착실하게 저축한 헨리는 24세에는 서부로 진출해 건설업에 손댔다. 이익이 크지는 않았어도 사업은 탄탄했다. 정부 발주 공사를 주로 맡았던 덕이다. 사진관의 손님이던 목재업자의 딸과 결혼(25세)한 뒤부터는 사업이 더욱 커졌다.

중장비 회사를 만들고 쿠바와 캐나다에서 대형공사를 따내며 승승장구하던 그의 비결은 공기 단축. 너무 빠르게 완공되는 공사에 사람들은 부실 시공이라는 의문을 품었어도 그가 맡은 공사는 하자가 없었다. 최신 기술을 개발하고 신형 장비를 투입한 결과다. 인부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도 헨리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성과급을 내걸고 단위 조직 간 경쟁심리를 유발하는 게 그의 주특기였다. 대공황마저도 그에게는 기회였다. 후버 댐을 비롯한 대형 공사를 공기를 단축해가며 준공해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결국 헨리는 경험 없이도 대규모 조선 수주를 따냈다.

문제는 동부 조선업자들의 시샘 어린 우려대로 기반이 전혀 없었다는 점. 인력도 조선소도 없이 조선업에 뛰어든 그는 처음부터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캘리포니아주 리치먼드에 조선소를 세울 때는 최소한 6개월이 소요될 것이라던 부지조성 공사를 단 3주 만에 마쳤다. 조선소 기반 시설이 채 갖춰지기도 전에 헨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인근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 부품부터 먼저 제작하고 나중에 완공될 조선소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헨리의 새로운 건함 방식은 수천 년 세월을 뛰어넘는 혁신이었다. 인류가 배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용골부터 제작해 나무나 철판을 붙여나가던 방식을 부품 조립 방식으로 대체한 것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리벳 접합 방식도 용접으로 바꿨다. 선박의 발주처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고 보다 대형화하는 설계 변경을 겪으면서도 헨리는 1941년 9월말 초도함인 ‘헨리 패트릭’호를 준공해 세상에 내놨다. 진수식에 참석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배 한 척 한 척이 전세계인의 자유를 위한 일격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아 새로운 수송함에 ‘리버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리버티급 수송함의 외형은 볼 품 없었다. 단순하다 못해 투박한 리버티급의 초도함 ‘헨리 패트릭’호 진수식을 취재했던 주간 ‘타임’지는 ‘미운 오리 새끼(Ugly Duckling)’라는 별명을 붙였다. 헨리는 이 배를 ‘바다의 T형 포드’라고 여겼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 T형 포드 승용차처럼 리버티급은 단순함과 생산 효율성, 기능성을 두루 갖췄다. 외형이 단순하고 속도가 시속 21㎞로 느렸을 뿐, 재화화물 10,856t이라는 수송력을 뽐냈다.

헨리 포드가 T형 포드로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개막한 것처럼 헨리 카이저도 리버티급으로 수송함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초도함 건조 다음날 14척이 한꺼번에 나왔다. 처음에는 한 척을 제작하는 데 244일이 소요되던 건조기간은 1년 뒤 59일로 짧아졌다. 전쟁 말기에는 42일까지 줄어들었다. 헨리는 공기 단축을 위해 아들과 아들 친구까지 경쟁 도구로 삼았다.

리치먼드 조선소는 아들에게, 새로 만든 오레곤 조선소는 아들 친구에게 경영을 맡긴 직후 진기록이 나왔다. 경쟁을 의식한 아들이 단 10일 만에 거대한 수송함 한 척을 뚝딱 건조한 것. 루스벨트 대통령도 ‘역사적 사건’이라며 진수식을 지켜봤다. 그러자 아들 친구가 4일 15시간30분 만에 한 척을 건조하는 불멸의 대기록을 세웠다. 미국 언론은 헨리를 ‘기적의 사나이’, ‘빨리빨리 헨리(Hurry up Henry)’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1944년 부통령 후보를 제의받았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헨리의 조선소를 비롯해 크고 작은 18개 조선소에서 쏟아낸 리버티급 수송함의 건조물량은 무려 2,718척. 속력을 시속 30㎞로 끌어올린 고급형 빅토리급(550척)과 파생형인 T2 유조선(533척)까지 합치면 총 건조물량은 3,801척에 이른다. 전쟁 기간 중에 미국은 하루에 3.5척씩 대형 수송함을 과자처럼 찍어냈던 셈이다. 리버티 시리즈는 전쟁 기간 내내 세계의 바다를 달리며 한창 때는 연합국 물자수송의 75%를 도맡았다. 미 해군은 트럭을 적재하고 트럭 위에는 지프차, 지프차 안에는 오토바이를 구겨 넣어도 리버티 시리즈들은 거침없이 파도를 헤치며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리버티급은 헨리의 제안으로 호위 항공모함 선체로도 쓰였다.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 일본도 16척을 보유한 항공모함을 7척 밖에 없었던 미국은 리버티급의 선체를 활용해 전투기 28대를 탑재할 수 있는 카사블랑카급 소형 항공모함으로 개조, 미 해군과 영국에 공급했다. 호위항공모함은 속력이 시속 32㎞에 불과해 맞바람이 불지 않으면 이륙이 제한되는 등 성능이 떨어졌으나 대서양의 독일 해군 잠수함 U-보트 사냥 작전에 투입돼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미국이 2차 대전을 통틀어 운영한 100척 이상의 중소형 호위항공모함 중에서도 헨리가 건조한 카사블랑카급(50척)이 가장 많았다.

헨리는 종업원의 복지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헨리가 조선소를 세우는 곳마다 인구가 늘어나자 특유의 속도전으로 주택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종업원용 병원도 건립하고 자체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해 종업원의 건강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여성 인력 고용과 중용으로도 유명하다. 헨리의 조선소에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작업이 남녀 혼성, 남성 작업반과 속도를 겨뤘다. 철강재가 모자라면 참지 못하고 제철소를 건설해 부품 수급의 차질을 막았다.

전쟁 후 헨리는 자동차와 항공·시멘트·알루미늄은 물론 하와이 개발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전방위로 확대했지만 말년은 ‘조선왕’으로 불리던 시절과 달랐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자동차 사업도 초기에 반짝했으나 곧 시들고 헨리는 1967년 8월24일 85세로 생을 마쳤다. 후손들은 기타리스트 등으로 이름을 날렸어도 가업은 제대로 잇지 못했다. 포천지에 의해 ‘말년이 불운했던 기업인’으로 뽑힌 적도 있는 그의 유업은 카이저 알루미늄 등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빨리 빨리’ 시대를 살았던 개발연도의 기억 때문일까. 헨리 카이저의 무차별 확장과 속도전이 남의 얘기 같지 않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과 비슷한 기업인이 있었다. 개발 시대 한국 기업인의 장점을 보는 듯한 헨리 카이저의 이름은 기업의 영욕 속에서도 빛난다. 말년에 거액을 기부해 설립한 미국 최대의 비영리 민간 건강재단인 ‘카이저 가족 재단’ 덕분이다. 헨리 사망 이후 유가족들은 재산 다툼 대신 고인의 재산을 처분해 카이저 가족재단에 보탰다. 인간의 생명은 짧고 영광의 기억도 시간 속에 흩어지고 말지만 선행과 자비는 세월을 뛰어넘어 살아남는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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