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워치] 다시 도마 오른 공정위 '칼' 전속고발권... 폐지 땐 기업 소송대란 불보듯

"불공정행위 근절위해 없애야"
野, 전면폐지 법 개정안 발의
고발 남발땐 소송으로 하세월
모든 기업행위, 수사대상 될판
한해 분쟁조정 8,000여건 전부 ‘고발전쟁’ 될수도

2515A01 최근3년간 공정위 검찰 고발 건수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의 불법행위를 공정거래위원회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한 ‘전속고발권’ 제도가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 및 법조계는 기업 불공정행위를 근절하려면 피해자가 직접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전속고발권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한해 8,000건에 이르는 기업 간 분쟁에서 실제 법원의 처벌 가능성과 관계없이 고발이 남발될 경우 사실상 모든 기업행위가 수사 대상이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전속고발권 폐지가 정치 쟁점이 되고 공정위와 검찰 간 권한 다툼의 성격을 띠면서 합리적인 해법은 멀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의 포문을 연 쪽은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다. 이에 맞춰 최운열 더민주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TF) 단장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전면 폐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는 절도나 살인 등 범죄 여부가 명확한 일반 형사범죄보다 시장 경쟁을 제한하거나 소비자의 후생이 제약돼야 위법성이 인정된다. 예를 들어 통신사에서 전화와 인터넷 이용 서비스를 함께 파는 행위는 공정거래법의 끼워팔기에 해당하지만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이를 반영해 지난 1981년 공정위 출범 당시부터 공정위가 전문적으로 판단하도록 전속고발제를 유지하고 있다. 담합 등 처음부터 나쁜 의도가 담긴 경우를 제외하면 불공정거래 혐의를 받는 행위 대부분은 기업이 비용절감과 판매촉진을 위해 벌인 경영활동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다른 경쟁자를 제약하고 소비자에게 피해가 클 경우에만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검찰에 고발한다.

그러나 공정위의 경고 이상 처리 건수 중 검찰 고발 비율은 연간 평균 2%대에 불과하면서 공정위가 처벌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 때문에 1996년 검찰의 고발요청권을 도입했고 2014년에는 경제민주화 정신에 따라 조달청·감사원·중소기업청도 고발요청권을 부여했다. 공정위가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더라도 이들 기관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한 것이다.


2515A05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시 변화


그러나 2014년 이후 중소기업청 등의 고발 요청은 아모레퍼시픽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 등 13건에 불과했고 이 중 기업의 자진신고로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2건을 제외하고 11건만 검찰 고발과 기소가 이뤄졌다. 공정위는 “중기청 등 해당 기관에서 실제 고발 필요성이 있는 사건만 걸렀고 피해자 기업들도 형사 처벌보다 경제적 손해배상을 더 원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더 민주 측은 “해당 기관의 무관심 탓”이라고 반박했다. 중소기업계 내부에서는 중기청을 장악한 중견기업의 반대로 중소기업의 고발 요구가 먹히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형사 처벌주의가 과도한 법조계의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의 경영활동이 수사 대상에 오른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형사 처벌 조항이 많다. 또 우리는 인구 1만명당 민사상 고소와 형사상 고발이 80건으로 일본보다 60배 많을 정도로 민사사건에도 형사 처벌을 요구하는 관행이 짙다. 반면 실제 기소 비율은 30%에 불과해 고소 고발이 남발된다는 지적이다. 한해 공정위와 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되는 분쟁조정 8,000여건 전부가 기업 간 고발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공정위의 우려다. 특히 법적 대응에 기민한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전속고발권을 폐지한다고 검찰이 날로 지능화되는 불공정행위를 얼마나 잡을 수 있겠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입찰 담합의 경우 검찰도 수사가 가능하지만 금융이나 정보기술(IT)·유통 등 증거를 남기지 않는 대부분의 담합은 검찰도 혐의 입증이 어려워 수사에 소극적이다. 검찰 내부에서 경쟁법 전문가를 육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속고발권을 폐지해도 법원에서 패소할 것을 우려해 수사가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이번 전속고발권 논쟁을 검찰 측의 권한 빼앗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검찰에 비해 공정위 역할이 축소되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도 있다”고 토로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과도한 형사 처벌 조항을 줄이고 담합 등 일부 행위에만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대안을 내놓았지만 공정위는 비현실적인 방안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불공정행위는 줄이되 경영활동에 제약을 주지 않는 합리적인 대안 논의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세종=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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