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사드 도입시 국내에 배치할 탄도미사일 추적용 레이더 AN/TPY-2의 모습./사진제공=레이시온
주한미군이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막기 위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려 하지만 사드용 레이더인 ‘AN/TPY-2’의 전자파 건강·환경 유해성 논란에 수개월째 발목 잡혀 있다. 전파법상 전자파의 인체 안전성을 책임지는 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이고 보건복지부 역시 전자파 신체노출의 유해성을 연구해왔지만 두 부처의 최양희·정진엽 장관은 침묵하고 있다. 전문부처가 입을 닫은 사이에 비전문가들이 전면에 나서서 찬반 양측 간 서로를 논박하는 소모적 상황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국내외 기관들의 분석자료를 통해 과학계가 밝혀온 전자파 인체 영향을 소개하고 사드 레이더 문제를 되짚어본다.
전자파의 개념도.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직각방향으로 물결치듯 퍼져나간다.
◇전자파 주파수, 강도 따라 신체 영향 달라=전자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수직 방향으로 진동하며 파도치듯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전자파 중에서도 초당 진동수가 3,000번~3조번(3㎑~3,000㎓)인 것을 전파라고 한다. 레이더는 일반적으로 전파 중에서도 극초단파(UHF, 300~3,000㎒)나 초고주파(SHF, 3~30㎓)를 쏴서 물체를 포착한다.
국립전파연구원에 따르면 생물이 전자파에 노출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은 이온화(전리 현상), 가열작용, 비열작용(호르몬 분비 이상에 따른 암 발생 등), 자극작용(감전, 화상, 근육 자극) 등이다. 이온화는 생체 구성물질의 전기적 성질을 바꾸는 현상이므로 인체에 유해하다. 다만 이는 전파를 사용하는 사드 레이더의 유해성 논란에서는 배제된다. 이온화는 전파보다 훨씬 주파수가 높은 엑스선·감마선 등의 영역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극작용 역시 사드 레이더 유해성 논란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민간인이 군의 통제구역을 넘어 레이더에 접근해 감전되는 상황은 발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자극작용인 근육 자극은 주로 100㎑ 이하의 저주파 영역에서 다뤄진다. 따라서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유해성 여부를 따지려면 주로 가열 및 비열작용을 살펴야 한다.
◇전자레인지 괴담 진위는=당초 사드 배치 후보지로 발표됐던 경북 성주군 일대에서 ‘전자레인지 성주 참외’ 괴담이 퍼졌던 이유는 바로 이 가열작용에 대한 논란에서 비롯된다. 가열작용이란 물질에 고파수의 전기장을 쏘았을 때 해당 물질 속 분자의 전기적 극성이 격렬히 바뀌면서 진동해 마찰열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유전가열 현상이라고도 하는데 전자레인지는 바로 이러한 원리로 음식을 데운다.
미국 전자방비업체 레이시온의 펄시 스펜서(가운데) 박사가 전자레인지를 소개하는 모습. 그는 세계 2차 대전 중 레이더 개발에 큰 역할을 했는데 이를 응용해 세계 최초로 전자레인지를 발명했다. 주한미군이 도입하려는 사드의 레이더는 마침 레이시온사의 제품이다. /사진출처=레이시온 60년사
인체 역시 강한 출력의 고주파에 직접 노출되면 가열현상에 따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레이더와 인체건강’ 자료를 통해 전파에 인체 일부나 전신이 노출돼 해당 부위의 체온이 섭씨 1도 이상 오르게 되면 백내장을 비롯한 다양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기존 학계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안구질환이 전자파의 주된 부작용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눈에는 상대적으로 혈관이 적어 가열작용으로 인해 상승한 온도를 식힐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신체 부위보다 낮기 때문이다. 황태욱 국립전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뇌세포 및 고환 등 생식기 역시 가열작용의 피해가 가장 클 수 있는 신체조직”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자레인지 효과 역시 사드 레이더의 부작용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신체조직이 가열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높은 강도의 전자파에 노출돼야 하는데 사드 레이더 주변의 전자파 강도는 이에 크게 미달했다. ICNIRP와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는 각각 가열효과 발생을 피할 수 있는 상한 한계치를 기준으로 전자파 인체노출의 한계기준을 권고하고 있는데 사드 레이더가 사용하는 주파수대역의 전자파에 대해서는 두 기관 모두 1㎡당 10W의 전력밀도를 기준치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지난 7월18일 괌에 위치한 앤더슨 미국공군기지에서 현지 군 당국이 측정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사드레이더로부터 1.6㎞ 떨어진 거리에서 잰 평균 전력밀도는 1㎡당 0.0003W여서 이 같은 기준치를 크게 하회했다. 정부가 당초 사드 배치 후보지로 발표했던 성주미사일포대로부터 인근 주민 주거 지역 간 거리가 1.5㎞임을 감안하면 사드 레이더 배치 시 인근 주거지역 전자파 강도 역시 괌의 측정사례와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인다.
◇발암·환청 논란은=그렇다면 전자파의 비열작용 등 다른 부작용의 영향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해성 여부를 확답하기 어렵다. 이론상으로는 호르몬 이상 등에 따른 암 발생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면 기존의 실험 및 추적연구 등을 보면 전자파에 따른 암 발생, 뇌전도(EEG) 이상, 청각 이상 등의 현상이 일부 연구진으로부터 보고되고 있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우선 영국의 번치 박사팀이 1962년부터 2008년 사이에 실시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전력선에서 멀어질수록 백혈병 발병률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의 소라한 박사팀이 웨일스와 영국에서 6개월 이상 전기회사에 고용됐던 전기 근로자를 장기간 관찰해 2014년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신경 퇴행성 종양 등의 발병 위험이 다소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러시아 야키멘코 박사팀이 2011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레이더 등에서 발생한 전파에 10년 이상 노출될 경우 발암의 영향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사드레이더와 같은 10GHz주파수의 전자파가 피부를 투과시 신체에 흡수되는 에너지의 상대적 세기를 퍼센티지로 나타낸 그림. 3.8mm의 까지 피부를 투과하면 전자파 강도는 원래의 37%수준까지 낮아져 거의 미미해진다. 영국 보건청 자료를 재구성한 그림.
다만 이들 실험 및 추적연구 중 상당수에서는 연구 결과의 일관성이 미흡하거나 방법이 적절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는 학계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이론상으로는 사드 레이더가 사용하는 전자파는 인체 투과력이 매우 약해 피부조차 거의 투과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드 레이더의 전파는 초고주파 중에서도 X밴드 대역이라고 불리우는 8.5~10㎓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한다. 그런데 영국보건청(HPA)이 독립연구단체에 의뢰해 지난 2012년 발간한 ‘전파의 전자기장에 따른 건강 영향’ 보고서는 “전파의 인체 투과성은 주파수가 증가할수록 줄어든다”며 “10㎓의 주파수에서 거의 모든 에너지가 피부 및 다른 표면 세포들에 흡수될 것이며 인체 심층부의 세포로 투과하는 에너지는 매우 적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의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10㎓ 대역의 전파는 인체 피부를 3.8㎜ 투과 시 전자기기장 세기가 원래의 37% 수준으로 급락한다. 근육조직의 경우 3.3㎜를 투과할 무렵에, 그리고 뼈조직의 경우 7.3㎜ 정도의 두께를 전파가 투과할 무렵에 전자기장 세기가 각각 37% 수준까지 떨어진다. 이른바 ‘역제곱의 법칙’도 무해론의 근거가 된다. 이는 전자파의 강도(전력밀도)가 안테나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역제곱에 비례해 줄어든다는 원리다. 쉽게 말해 거리가 2배 멀어지면 전력밀도는 4분의1배로 줄어들고 3배 멀어지면 9분의1배로 줄어들어 레이더에서 멀리 떨어진 민간 주거 지역에서는 전자파 영향이 미미할 정도가 된다는 뜻이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