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닛신 홈페이지
라면의 전성시대는 끝났나? 감소세가 뚜렷하다. 세계 인스턴트 라면협회(WINA)의 국제 라면시장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지구촌의 라면 소비량은 977.1억개. 지난 2012년 1,018억개를 소비하며 처음으로 1,000억개를 넘어섰던 라면 소비는 2013년 1,059.9억개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4년에는 1,038.5억개로 줄어들더니 2015년에는 1,000억개 아래로 떨어졌다. 딱 5년 전 수준이다.
국제 라면 소비 감소세는 전체 소비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중국의 라면 소비는 2013년 462.2억개에서 2014년 444억개, 2015년 404.3억개로 줄어들었다. 세계 3위의 라면 소비국인 일본(연간 55.4억)보다 큰 시장이 불과 2년 만에 사라진 셈이다. 라면의 국제 소비 감소세와 닮은 게 있다. 국제 무역이 위축된 모양새가 라면 소비 감소와 유사하다. 라면 소비가 살아나면 국제 무역도 회복될 수 있을까.
라면 소비 통계에서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한국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여전히 세계 1위라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의 1인당 연간 인스턴트 라면 소비는 72.7개. 2위인 베트남(51.8개), 3위인 인도네시아(51.2개)보다 훨씬 많다. 라면 소비 절대량이 줄어드는 주요 소비국과 달리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라면 소비는 미미하게나마 나 홀로 증가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수출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경제를 보는 것 같다.
국제적인 라면 수요 감소가 급감세로 연결될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면은 분명한 특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리가 간편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경기 불황기의 끼니 해결용으로는 라면 만한 대안도 찾기 어렵다. 제품 다양화로 소비자 선택의 범위도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다. 국물이 있는 국수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권에서도 라면은 잠재력이 있다. 미국 교도소에서도 컵라면이 최고 인기 품목이란다.
순항과 정체, 퇴조의 기로를 맞고 있는 인스턴트라면의 출발은 5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8월25일. 일본 닛신(日淸)식품이 발매한 ‘치킨 라면’이 시초다. 인스턴트 라면의 태생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중국에 있었다는 중국 기원설과 일본 기원설로 엇갈리지만 후자가 정설이다. 다만 일본에 의한 인스턴트 라면 개발도 중국과 관련이 없지는 않다. 개발자가 중국계 일본인이니까.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인물은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개발 당시 나이가 48세였다.
대만 태생으로 우바이푸(吳百福)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실 부모하고 조부모와 함께 대만과 일본을 오가며 섬유업을 경영하던 사업가였다. 일본 대학에 다니고 일본여인과 결혼한 그는 일제 패망 뒤 일본에 눌러살면서 일본인으로 귀화해 식품사업에도 발을 돌렸다. 세금을 내지 않아 2년간 옥살이도 경험했던 그는 나이 40을 넘기면서부터 일이 더욱 더 풀리지 않았다.
사업이 꼬이다 끝내는 지역 신용금고가 망하는 통에 공장 문을 닫고 집만 달랑 남은 상황. 그는 포장마차에서 ‘라멘(생면)’을 먹기 위해 줄 서는 광경을 보고는 ‘라멘 제품화’에 승부를 걸었다. 집 한 모퉁이에 솥을 걸고 연구를 시작했으나 난제가 많았다. 무엇보다 유통과 장기 보관을 위한 건조가 어려웠다. 젖은 라면을 햇볕에 말리거나 쪄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안도 모모후쿠 뿐 아니라 당시 일본에서는 적지 않은 과학자와 사업가들이 라멘 대중화에 매달렸다. 전후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들로 인해 쌀이 모자라 미국 잉여농산물 밀가루로 새로운 대체식품을 개발하려는 경쟁이 일었다. 1953년에는 즉석 굴곡면으로 특허를 얻은 사람도 나왔다. 1955년에는 ‘즉석 중화면’이 시판됐으나 너무 잘 부서졌다. 1956년에는 일본의 남극탐사대도 즉석면을 챙겨 떠났다.
실용성과 맛이 떨어졌을 뿐이지 인스턴트 라면은 안도의 발명 이전부터 꾸준히 나왔던 것이다. 1958년 봄에는 남극탐사대에 즉석면을 납품했던 업자가 기름에 튀긴 국수와 양념이 들어간 국물이 조합된 제품을 선보였다. 안도는 튀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생면을 튀겨 건조하는 방법(瞬間油熱乾燥法·순간유열건조법)을 개발했다지만 이전부터 비슷한 시도가 있었던 셈이다(순간유열건조법이란 짧은 시간에 생명을 튀기는 기법을 말한다). *
안도가 새로운 방법으로 상품화한 치킨 라면은 대성공을 거뒀다. 치킨 라면의 선풍적 인기는 카레 라면, 볶음면으로 이어졌다. 안도는 1971년 컵라면도 개발해냈다. 인스턴트 라면의 양대 산맥인 용기면과 컵라면을 모두 개발하는 금자탑의 주인공인 안도는 승승장구하며 활기찬 말년을 보냈다. 2007년 97세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남다른 건강을 과시했던 그는 건강비결을 라면 섭취와 소식, 운동, 명상으로 꼽았다.
우리나라에 인스턴트 라면이 등장한 시기는 1963년 9월. 일본보다 5년 늦었다. 삼양식품 창립자 전중윤 회장은 안도에게 기술 제공을 간청했으나 매정하게 거절 당했다고 전해진다. 대신 2위 업체이던 묘조(明星·명성)식품으로부터 무상에 가까운 기술 지원을 받아 삼양라면을 선보였다. 마침 극심한 쌀 부족 사태를 겪고 있던 시절이어서 라면은 곧 대표적인 대용식으로 자리 잡았다. 미약하게 출발했던 한국의 라면은 요즘은 품질에서 세계 최상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유의 매운 맛을 살리는 등 차별화한 제품 개발 덕분이다.
인스턴트 라면의 개발자 안도는 평생 ‘식족세평(食足世平)’이라는 철학으로 기업을 영위했다고 한다. ‘먹을 것이 넉넉해야 세상이 평화롭다’는 뜻이다. 라면은 식족세평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대체품이자 구호품이다. 우리 라면업체 가운데 구호와 직원 복지에 힘을 기울이는 업체가 있어서 그런지 세계적인 소비 위축 분위기 속에서도 한국산 라면은 상대적으로 순항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도 이례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 라면 시장의 침체가 일시적인지, 또 원인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준비해야 할 때다.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고 경쟁 속에 발전해 온 한국의 라면산업이 경쟁력을 이어나가기 바란다. 우리 경제도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라면 발명과 관련해 사실과 관계없는 자료들이 온라인 상에 적지 않게 돌아다닌다. 안도가 사업에 실패하고 10년간 연구도 진전이 없어 술로 울분을 달래는 나날을 보내다 주점의 어묵 튀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자료도 있지만 근거가 없는 얘기다. 특히 발명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일본 자료에 이런 경우가 많다. 특정 유명 저자의 저술이 그런 경향이 짙다. 이를 그대로 한글로 번역한 어린이용 발명책자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