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 동안 노사가 합심해 원가절감에 집중하자는 뜻으로 ‘서바이벌(survival·생존) 100’ 플래카드를 내건 한화종합화학 울산사업장의 모습. /사진제공=한화종합화학
지난해 겨울 한화종합화학 사업장 분위기는 살벌했다. 노조는 상여금 600%를 2년 내 통상임금으로 전환하는 등의 급여 인상안을 주장했고 사측은 영업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맞섰다. 10월부터 한 달간 울산 사업장 직원들이 파업했고 파업 후 직장폐쇄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랬던 한화종합화학 노사가 업무와 급여를 나누는 대신 일자리를 지키는 ‘잡셰어링’에 최근 전격 합의했다.
노사가 날 선 대립이 아닌 상생의 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테레프탈산(TPA) 등 주력제품의 심각한 공급과잉 위기 속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석유화학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종합화학 노사가 앞서 이달 11일 최종 합의한 잡셰어링안의 핵심은 유휴공장 근무 직원을 자르지 않고 완전고용을 지킨다는 점이다.
한화종합화학은 지난해 말부터 연간 TPA 40만톤을 생산하는 울산 1공장 가동을 중지했으며 1공장 생산직 32명도 부분휴업 중인 상태다. 노사는 다른 공장의 교대조를 4조3교대에서 5조3교대로 늘려 놀고 있는 생산직을 수용하기로 했다.
사무직도 주4일 근무제로 전환하고 휴가 사용을 권장해 근무 일수를 줄인다. 한화종합화학 관계자는 “잡셰어링 덕분에 정리해고 없이 완전고용을 유지하게 됐다”면서 “대신 임직원들은 10~20% 수준의 급여 삭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종합화학은 지난 1974년 창립된 국내 최초의 TPA 생산기업이다. 하지만 전 세계 시장 침체로 인한 제품수요 감소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TPA 생산량 증대로 심각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TPA는 현재 석유화학 업계가 구조조정 1순위로 꼽는 제품이기도 하다.
자율적 구조조정이 시급한 석유화학 업계는 한화종합화학이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선례로 남을지 주목하고 있다.
이미 업계의 주요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참고하기 위해 한국석유화학협회를 주체로 경쟁력 강화 보고서를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발주한 상태다. 이미 18일 베인은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이상운 효성그룹 부회장, 김창범 한화케미칼 사장 등 업계 주요 사장단에 중간보고를 진행했다. 베인은 TPA와 폴리염화비닐(PVC)·폴리스티렌(PS)·합성고무(SBR·BR) 등의 공급과잉이 심각하다고 진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인은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 방향을 결정할 최종 보고서를 다음달 제출할 예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종 보고서는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 뿐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품 생산량과 근로자 수를 줄이고 늘리는 문제 등은 각 기업이 알아서 판단할 몫”이라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