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10대들이 ‘극단적 다이어트’로 내몰리고 있다. 현기증이 살 빠지는 기분이라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
#중학교 3학년 김나은(가명)양은 키 160cm에 몸무게 52kg을 6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몸무게가 60kg대 중반이었다는 김양의 다이어트 비법은 ‘씹뱉(음식물을 씹은 후 뱉어내기)’이다. 어제 밤에도 피자 한 판을 삼키지 않고 뱉어냈다는 김양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으면서도 살찔 걱정은 전혀 없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제 ‘실수로’ 피자를 한 입 삼켰는데 칼로리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며 “요즘 얼굴이 자주 부어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2학년 이지훈(가명)군은 얼마 전 ‘허벅돼(허벅지가 돼지같다는 은어. 양발을 붙이고 섰을 때 허벅지 안쪽이 붙는 경우를 일컫는다)’ 탈출로 교복 바지를 수선하는 기쁨을 맛봤다고 고백했다. 이군은 “폭토(폭식 후 토하기)로 드디어 허벅돼를 졸업했다”며 “슬림핏(몸매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자연스럽게 좁아지는 스타일) 스타일로 바지를 수선했다”고 털어놨다. 건강을 염려하는 기자의 질문에 이군은 ‘(살을 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서도 “(토를 하다 보니) 요즘은 손가락 안 넣어도 음식물이 올라오는데 별 일 없겠죠?”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일부 10대들의 ‘완벽한 외모’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고있다. 음식물을 한 입 베어먹기도 전에 ‘살찌지는 않을까’ 먼저 걱정하고 하루 종일 거울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얼굴을 비춰본다. 일거수 일투족을 겉모습과 연관시키는 병리적 현상인 외모강박증에 시달리는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10대의 경우 또래집단의 평가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는 데 있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외모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게 되고 결국 신체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의 병을 앓는 10대들은 우울증부터 거식증·폭식증 등 섭식장애, 자살기도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부작용을 호소한다. 또한 신체에 대한 병리적 집착은 집단 따돌림으로 이어지는 등 타인에게까지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신체에 대한 병리적 집착은 집단 따돌림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애초에 ‘피해자가 게을러서 문제를 자초했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많은 가해자들이 이같은 인신공격을 합리화시킨다는 점이다.
‘못생긴 건 용서돼도 뚱뚱한 건 용서 안돼’ 인식 통용
따돌림 당할까 두려워 극단적 다이어트법 선택하기도
3일간 물만 먹고 2주새 5kg을 감량했다는 이인경(17·가명)양 역시 “살쪘다는 건 자기관리가 부족하다는 뜻”이라며 “나처럼 노력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코치’로 불리는 이양이 전수해 준 다이어트 비법은 ‘점심만 먹고 매일 줄넘기 5,000개 하기’다. 가끔 현기증을 느낀다는 그는 그럴 때마다 “짜릿하다”며 “살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이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이양은 ‘먹으면서 건강하게 빼라’는 어른들의 충고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라며 “몸무게에 집착한다는 건 자기관리에 철저하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외모평가에서 얼굴보다 몸에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10대들은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타고난 얼굴은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지만 몸매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하기 때문. 그래서 10대 사이에서는 ‘못생긴 건 용서돼도 뚱뚱한 건 용서 안 된다’는 말이 통용된다. 10대에게 다이어트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나 다름없다. 또래집단 내에서 ‘용서받지 못할 몸매’를 가졌다고 평가 받는 순간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집단 따돌림 피해 학생들 중 상당수가 온라인 대화방에서 ‘돼지 같다’ ‘그 얼굴로 살아서 뭐하겠느냐’ 등 외모와 관련된 욕설을 들었다고 답했다. 이러한 폭력을 겪거나 지켜보게 되면 학생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혹시 내가 왕따를 당하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과 조바심에 섭식장애까지 감수하는 극단적 다이어트로 내몰리는 것이다.
이는 외모평가가 일상화된 사회적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모가 당연한 하나의 스펙이 되면서 타인의 외모를 ‘지적’하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노력으로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몸의 경우 지적의 강도는 가혹할 정도다. 진짜 문제는 타인의 몸매에 대해 폭언 수준의 지적을 늘어놓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기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피해자가 게을러서 문제를 자초했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해자는 인신공격을 합리화시킨다. 가해자는 ‘그럴 만 했다’고 생각하고 피해자는 억울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10대의 외모 집착, 왜곡된 가치관 만드는 대중매체 탓일까
불우한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자기파괴적 현상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10대의 외모 집착과 대중매체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대중매체가 또래 연예인들의 마른 몸매를 미의 상징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분석이다. 2000년대 후반 한 일본잡지는 명백한 저체중을 ‘미용체중’이라는 용어로 포장해 대중들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처럼 인식시켰다. 이후 ‘미용체중’은 이상적인 몸무게를 나타내는 단어로 통용된다. 건강을 고려한 표준체중과 이상적 겉모습으로 일컬어지는 미용체중은 같은 키를 기준으로 봤을 때 많게는 무려 10kg 가량 차이가 난다.
‘살 찐 사람은 자기관리가 부족하다거나 절제력이 없다’는 사회적 시선이 만들어진 것도 대중매체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연예인이 체중이 늘어났을 경우 ‘관리가 소홀했다’, ‘망가졌다’ 등의 수식어가 붙기 일쑤다. 반면 다이어트에 성공한 연예인에게는 ‘여신 변신’·‘환골탈태’·‘훈남 등극’ 등 찬사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한다. 살이 찐다는 것 자체가 의무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전제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 집착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도 있다. 사회문화적인 외부적 요인보다 가족관계·트라우마 등 내부적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한방정신분석학을 연구한 강용혁 경희마음자리한의원 원장은 특히 부모의 강압적인 훈육방식이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강 원장은 “(다이어트 집착 때문에) 내원한 환자들을 살펴보면 99%가 주체성을 상실한 채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라며 “억눌러왔던 욕망이 분출되면서 나타나는 자기파괴적 현상인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중매체 때문에 몸무게에 집착하게 된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거식증으로 사망한 모델 등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사건들이 만들어낸 편견”이라고 단언했다.
강 원장은 “외모 집착을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단정짓는 건 위험하다”며 “섭식장애 등 부작용이 발생하면 성장환경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본질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영상=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