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EU 집행위원회 판결에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판결이 “일방적인 접근”이라며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공정한 조세 시스템을 만들려는 미국과 유럽의 공조가 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 재무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재무부는 이번 판결을 “불공평하다”고 정의하고 “유럽에서의 외국인 투자와 기업 환경은 물론 미국과 EU의 경제 파트너십을 약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폴 라이언 하원 의장도 “이번 판결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강조했으며 찰스 슈머 상원의원(뉴욕)도 “이번 판결은 미국의 기업과 조세 시스템을 목표로 한 것”이라며 “EU 집행위원회가 값싼 돈을 취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애플과 함께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아일랜드도 집행위원회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마이클 누난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아일랜드 세제는 예외 없이 엄격한 법을 적용하고 있다”며 “(항소 결정이) 아일랜드 세제가 온전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EU가 회원국의 세정 주권을 침해하지 못하게 막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이번 판결이 단지 정부와 기업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 침해와 관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쿡 CEO는 “애플의 대부분의 수익은 미국에서 발생해 대부분의 세금을 미 정부에 납부하고 미국에서 영업을 벌이는 유럽 기업도 똑같은 원칙에 따른다”며 “이번 판결은 아일랜드의 세법을 무시하고 국제적인 조세 시스템을 뒤엎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판결로 아일랜드와 유럽에 있는 기업들이 기존에 존재하지도 않은 법에 의해 세금이 추징당하는 위험에 몰릴 것”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EC의 결정에 대해 애플은 물론 미 정부와 정치권까지 나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같은 최근 거세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다국적기업들이 조세를 회피하기 위해 세율이 낮은 나라로 떠나고 있다는 비판이 대선을 앞두고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는 법인세 회피를 위해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는 기업에 대해 ‘국외전출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으며, 도널트 트럼프 공화당 후보도 법인세율을 현행 39%에서 15%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슈머 의원은 “(미국 기업의) 이익을 본국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국제 세제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아일랜드가 그동안 다른 EU 회원국보다 현저히 낮은 12.5%의 법인세를 내걸어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 장기적인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로 인해 큰 이득을 볼 국가 중 하나로 꼽힌 아일랜드가 EU에 반기를 든 배경이다.
EU는 현재 온라인 서점 아마존과 맥도널드의 탈세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어 기업 본사 이전에 따른 미-EU간 조세 분쟁은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4일 애플 판결을 앞두고 “‘초국가적인 조세 당국이 세제 개혁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도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슈머 의원도 “재무부가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