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필의 음악 이야기] 무대위의 카리스마 바리톤

바리톤은 남성에 있어 가장 편안하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일반적인 음역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가장 평범한 목소리일 수 있고 그 개성도 테너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그러나 오페라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바리톤의 캐릭터에 대한 다양성은 테너를 훨씬 앞선다.

오페라의 바리톤 역할은 대개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반대하는 오빠, 사랑에 빠진 테너의 연적, 남자 주인공의 정적 등 일종의 특별한 캐릭터가 필요한 역할을 많이 맡는다. 그렇다 보니 악역을 대표하는 성향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오페라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바리톤의 존재는 스토리의 연결 고리가 되고 극적으로 치닫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오페라의 대 작곡가 베르디(Verdi)는 바리톤의 비중을 테너보다 더 중요시 여겨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그의 작품 '시몬 보카네그라', '리골레토'는 그 주인공 타이틀 롤을 아예 바리톤이 맡고 있을 정도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중 하나인 '오텔로'에서도 오텔로의 마음을 현혹시켜 그를 살인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오텔로의 신하 '이아고' 역할이 바리톤이다. 이아고 없는 오텔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바리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가 카리스마다. 이야기의 전체를 장악하고 이끌어가는 힘! 오페라에서의 바리톤은 절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또한 바리톤은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에서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극의 중심에 선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그렇고 로시니의 '세빌리야의 이발사'가 그러하다. 이러한 오페라 속에서 바리톤은 매우 활기차고 코믹한 재간둥이 같은 이미지를 연기하며 남녀를 맺어주는 유쾌한 중매쟁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맡은 역할이 그러할 뿐 극을 이끌어가는 내면적인 카리스마는 여느 오페라와 다를 바 없다.

필자가 좋아하는 바리톤중에 이탈리아의 티토 곱비(Tito Gobbi)라는 성악가가 있다.

요즘도 종횡무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리톤 레오 누치는 이탈리아 오페라라면 어떤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잘 노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어제는 세빌리야의 이발사의 피가로, 오늘은 리골렛토, 내일은 오텔로의 이아고를 노래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변화무쌍의 대명사인 그가 규범으로 삼았던 대선배가 바로 티토 곱비이다. 티토 곱비는 자신의 노래를 '연기하는 목소리' 라고 자평했다. 사실 그가 최고의 바리톤 목소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천후,' '변신의 귀재' 와 같은 찬사를 받으며 빛나는 불세출의 성악가로 평가 받고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가수이기에 앞서 '무대위의 연기자'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철저하고 예리한 분석을 바탕으로 표현하고자 평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는 연기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래는 포기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졌고 이것은 당대는 물론 후대의 오페라 공연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티토 곱비는 성악가로 성공하기 전 영화배우로 활동을 했다. 성악가가 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 선택한 길이었지만 배우로서의 경험은 오페라에 꼭 필요한 연기에 눈을 뜨게 해주었고 그것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했다.

그는 많은 음반을 남긴 성악가이기도 하다. 오페라 전곡 녹음만해도 30종이 넘는다. 그의 음반을 들을때면 필자는 언제나 눈을 감는다. 그 이유는 그의 목소리가 필자의 머리속에 움직이는 영상처럼 연기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바리톤의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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