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우칼럼] 軍이 지쳤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사상 최장 9개월째 경계태세
북핵 도발 이후 긴장의 연속
피로 누적, 사고 우려 커져
최상 컨디션 위한 휴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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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지쳤다. 지난 1월6일 북한의 기습적인 4차 핵실험으로 발동된 대북 경계 태세가 9개월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군이 이토록 오랫동안 격상된 경계 태세를 유지하기는 1948년 창군 이래 처음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직후에도 경계 태세의 단계를 끌어올린 군은 두 달 만에 평시 상태로 돌아왔다. 군의 긴장과 피로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경계 태세를 장기간 유지하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안보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 북한은 핵실험뿐 아니라 각종 미사일을 발사하며 위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북한이 올 들어 발사한 장사정 방사포는 12발로 전년의 4발보다 세 배 늘어났다. 탄도미사일도 10회에 걸쳐 16발을 쏘아댔다. 최근 2년간의 기록(2014년 13발, 2015년 2발)보다 많은 탄도미사일을 8개월 동안 발사한 것이다.

새로운 위험 요인도 등장했다. 이전까지 단 한 차례였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 발사가 올 들어 3차례나 이어졌다. 발사 횟수도 위협적이지만 내용은 더욱 그렇다. 실패를 반복하던 무수단 중장거리 탄도미사일과 SLBM은 최근 발사에서 성공을 거뒀다. 군 정보당국은 북한이 전략적 무기를 통한 도발보다는 비무장지대(DMZ) 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전술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최근 실험에 성공한 것처럼 우리 군 역시 대비 태세에서 보이지 않는 성과를 냈다. 8월24일 새벽 북한이 SLBM을 기습적으로 발사했을 때 우리 군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빠른 탐지능력을 보였다. 격상된 대북 경계 태세 아래에서 북한 신포급 잠수함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군 정보당국은 신포급 잠수함이 탐지되면 예상 해저 경로까지 샅샅이 추적하고 있다.


문제는 안테나를 늘 곤두세워야 할 정보당국뿐 아니라 전군이 일종의 비상 대기 상태라는 점이다. 경계 태세가 격상되면 부대 규모와 병종에 따라 임무가 다르지만 크게 두 가지가 달라진다. 상시 대기 화력이 증강되고 비상 출동 시간이 짧아진다. 평소 자주포 0문이 준비하고 있었다면 경계 태세 발동 이후에는 최소 두 배는 증강 배치되고 30분 내였던 비상 출동 시간도 ‘즉시’로 당겨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전군이 ‘5분 대기조’ 상태다. 명령이 떨어지면 5분 안에 출동해야 하는 5분 대기조는 긴장을 요구받는다. 찌는 여름날의 취침시간에도 5분 대기조는 전투복과 전투화를 벗을 수 없다. 신속한 출동을 위해 군장도 늘 꾸려져 있는 상태다. 당연히 병사의 피로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피곤에 지친 병사는 위험하다.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군 생활에 대한 회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군은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이미 3월 중순 ‘경계 태세는 유지하되 각급 부대 지휘관의 판단과 재량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특히 병사들의 외출·외박, 휴가를 보장하고 영내 체육 활동과 취미 생활을 장려했다. 경계 태세가 두 달을 넘어가면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 60만이 넘는 병력을 모두 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을 강조하거나 진급 의욕이 강한 일부 지휘관들의 경우 곧이곧대로 경계 태세를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휘관이 퇴근도 안 하고 영내에 거주하며 부대를 조이면 상명하복 조직의 특성상 아래 계급으로 내려갈수록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위관급 초급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병영문화 혁신 대책이 대대적으로 시행된 이래 가뜩이나 계급과 직위의 권위가 예전과 달라진 마당에 군 간부들은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맞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 수뇌부가 3월부터 부분적이나마 탄력적 운용에 방점을 찍었다는 사실은 장기 경계 태세의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해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력의 눈치라도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군을 잘 아는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이러지 않았다.

무한정 늘어지는 경계 태세는 오히려 해롭다. 특별 경계가 상시화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특별로서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또 군은 본질적으로 준비하고 경계하는 조직이다. 언제라도 도발에 대응하려면 군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장기간 이어온 경계 태세를 하루바삐 평시 수준으로 돌릴 때다. 군이 편해야 안보도 튼튼해지는 법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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