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덴마크)와 2위 MSC(스위스·이탈리아)가 속한 해운동맹 2M에 가입한 현대상선(14위)의 운명 역시 “위태롭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이달 하나 남는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의 덩치를 키우는 ‘해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이 조성한 1억2,000만달러(1조4,000억원) 규모의 선박 건조 지원 프로그램(선박펀드)으로 1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선박 건조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순진한 발상”이라고 일갈했다. 이미 현대상선이 건조한 초대형선박이 활용될지 말지는 글로벌 공룡 머스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해운 시장은 교역침체로 배가 남아도는 공급과잉에 허덕이고 있다. 이 가운데 머스크는 초대형선박을 이용해 운임 단가를 낮추는 치킨게임을 유발한 당사자다. 머스크가 보유한 선박만도 623척이며 같은 2M 소속 MSC의 선박은 493척이다. 반면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은 60척에 불과하다. 한 대학 교수는 “선박이 남아도는 머스크가 현대상선이 초대형선박을 만들었다고 전 세계 주요 노선을 운항할 수 있도록 해주겠느냐”며 “2M 운영의 룰은 머스크가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한진해운이 디얼라이언스 결성을 주도한 것은 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며 “머스크가 룰을 바꾸면 현대상선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상황은 갈수록 나쁜 쪽으로 흐르고 있다. 상반기 국내외 글로벌 주요 해운사들은 대부분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태평양에서 바로 북·남미 동부로 이어지는 파나마운하가 지난 6월 확장 개통하면서 해운업체들이 초대형선박을 투입해 운임 단가를 낮추는 공급경쟁을 벌인 탓이다. 치킨게임의 여파는 아시아 역내 시장에까지 번지고 있다. 해운사들이 확장된 파나마운하로 북미와 남미 항로에 1만TEU급 선박을 전진 배치하고 기존 4,000TEU급 선박은 아시아로 돌리며 역내 공급과잉이 유발되는 상황이다. 전 세계 교역의 회복 없이 글로벌 해운사들의 선박 대형화가 확산되면 컨테이너 운임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특히 아시아~북미 노선 점유율이 2위(9.03%)인 머스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머스크는 파나마운하 확장 개통에 맞춰 7월 아시아~미주 노선에 8,500TEU급 컨테이너선 17척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머스크와 MSC(7.10%), 현대상선(4.46%)의 점유율은 20%에 달한다. 한진해운의 점유율(7.39%)을 흡수할 경우 28%로 2M은 아시아~미주 노선을 사실상 지배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대상선의 경영적자가 지속돼 유동성마저 바닥나는 경우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 1조2,000억원으로 내년까지 버텨야 한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4,170억원의 적자를 냈다. 업황 회복 지연으로 적자가 이어지면 결국 하나 남은 국적선사의 지분을 헐값에 팔거나 ‘유동성 지원 불가’를 외치며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냈던 채권단이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이때 미주 노선에 공을 들이는 머스크의 인수합병(M&A)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머스크는 1999년 네덜란드의 사프마린과 미국의 시랜드, 2005년 피앤오네들로이드를 인수하며 덩치를 키운 M&A 공룡. 현대상선의 2M 가입 당시 머스크가 현대상선을 인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국적선사 지분을 팔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순진한 것”이라며 “머스크는 상장시장에서 현대상선 주식 5~10%만 매입해도 주요주주로서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지거나 배임 소송을 걸며 경영권을 간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구경우기자 조민규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