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이라는 시집에 실린 시다.
2년 전 38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마쳤다. 우리은행에 몸담고 있으면서 말단 행원부터 시작해 은행장이 되기까지 내 나름대로 은행원으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 덕에 4년은 우리은행장이라는 큰 자리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듣고 넓은 것을 보면서 은행이 해야 할 의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도 있었으나 나름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 덕분인지 지난해 말 저축은행중앙회장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금융업에 종사해왔기 때문인지 저축은행이 그리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자리에 앉고 보니 전에 은행에서 보고 듣고 그리고 겪었던 금융보다 더 넓고 더 세심한 부분이 많이 있음에 놀랐다. 아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고은 시인의 시구처럼 노를 놓지 않았다면 그저 가는 길만 바라봤을 것이다. 하지만 노를 놓고 나니 그동안 내가 보고 겪어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고 넓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토록 자신한 금융이라는 분야에서 내가 너무 작은 것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러나 비록 노를 놓쳤다 하더라도 배는 물에 떠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하며 그 시간 동안 내가 놓치고 간과한 것들을 돌이켜보면서 다시 노를 젓는다면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금융이 잘 갖춰진 항로였다면 지금 저축은행업계는 79개 회원사와 함께 지켜나가야 하는 넓은 바다다. 그것도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특히 지난 2010년은 해일이 일어난 것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일부 저축은행으로 인해 불거진 아픔을 겪으며 많은 고객이 저축은행에 대한 신뢰를 잃고 떠나갔다.
그래서 회장 취임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저축은행 본연의 책임인 서민금융 지원이었다. 은행에서 쌓은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출시한 상품과 서비스들을 돌이켜보고 아쉽거나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서민과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을 위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시작하며 고객의 신뢰를 다시 쌓아나갈 방법을 마련했고 또 좀 더 발전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공헌활동도 병행하며 우리의 진심을 전하려 노력했고 고객들 역시 그런 우리를 믿고 다시 돌아와 주리라는 믿음도 갖게 됐다.
이제 8개월이 훌쩍 지났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나에게 이렇듯 더 넓은 물을 볼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저축은행중앙회와 회원사 모두가 기대에 부응하는 금융기관이 되도록 다짐하며 오늘도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 예전과 다르다면, 이번 항해는 꽤 즐거울 것 같다는 점이다.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