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앞줄 왼쪽부터) 독일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주요20개국(G20) 지도자들이 4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G20 정상들은 세계 경제의 저성장 극복을 위해 보호무역주의 반대에 합의했지만 통상·안보 등 자국의 이해가 달린 부분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항저우=EPA연합뉴스
주요20개국(G20)이 5일 중국 항저우에서 폐막된 G20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경제 안정과 저성장 극복을 위해 보호무역 조치를 동결하고 교역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자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주장하는 중국과 철강 등 과잉공급 산업에서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미국·유럽연합(EU) 등이 각론에서 첨예한 이견을 노출해 하반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이 철저하게 자국의 전략적 이해를 고집한 남중국해 영유권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이슈에서도 G20은 진전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안보 문제를 둘러싼 관련국 간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호무역 조치 동결 합의했지만…=이번 G20 회의에서는 중국이 자국 주도권을 부각할 수 있는 경제 의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글로벌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골자로 한 ‘항저우 컨센서스’를 이뤄냈다. 각국 정상은 세계 경제 둔화 추세를 막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배척하고 이를 위해 무역원활화협정(TFA)을 연내 비준할 필요성이 높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다시 싹트기 시작한 각국 보호무역주의의 흐름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가 자칫 통상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대목이다.
각국 정상들은 중국 위안화를 비롯한 각국의 급격한 환율변동이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수출 증가를 위한 경쟁적 통화가치 절하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글로벌 경제회복을 위해 각국이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을 활용해야 하며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투자에 동참해야 한다는 데도 동의했다.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매체는 이번 G20 회의에서 처음으로 경제성장 문제를 글로벌 거시정책의 최우선 의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2030년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행동계획을 제정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미·EU, 과잉공급 분야 과감한 개혁 주문=세계 각국 정상은 이처럼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는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해 정책공조를 이뤄야 한다는 데는 뜻을 모았지만 △과잉공급 구조개혁 △환율변동 대응책 △투자장벽 해소방안 등 각론에서는 적지 않은 의견차를 드러냈다.
미국과 EU는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중국의 과감한 개혁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과잉생산은 공급이 아닌 글로벌 경제부진에 따른 수요부진 문제라며 각국의 공동 노력을 강조했다. 팽팽한 이견을 극복하지 못한 G20은 결국 글로벌 경제둔화와 수요부진으로 일부 산업에서 과잉생산 등 구조적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철강 등 과잉산업에서 공동대응 노력을 벌이자는 선언적 합의로 회담을 매듭지었다.
투자 이슈에서도 중국은 호주를 비롯해 각국과 마찰을 빚으며 향후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 먹구름을 예고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호주 목장과 배전업체 등에 대한 중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호주 정부가 잇따라 제동을 건 것을 두고 맬컴 턴불 호주 총리에게 “공정하고 투명하며 예측 가능한” 투자환경을 조성해줄 것을 촉구했지만 턴불 총리는 “호주가 중국에 투자하는 것보다 중국 기업이 호주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다”면서 중국의 더딘 투자규제 조치들을 오히려 문제 삼았다.
◇깊어진 영유권·안보 이슈 갈등의 골=남중국해 영유권과 사드 문제를 둘러싼 팽팽한 대립은 이번 G20 정상회의 곳곳에서 확인됐다. G20 개막 전날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사드의 한국 배치에 반대한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고 오바마 대통령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국제법을 따르라며 중국을 몰아붙였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영유권 이슈와 통상 문제 등을 둘러싼 G2 간 긴장이 그대로 노출된 회의였다”면서 이번 G20 회의에서는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사실상 제대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과잉공급 해소책에 대한 이견을 비롯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사이버테러에 대한 불신, 사드 배치 대립까지 겹치면서 세계 정치·경제지형도를 흔들 수 있는 G2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