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창] 헬리콥터 머니, 운용의 묘를 살려야

마리노 발렌시스 베어링자산운용 런던 멀티에셋그룹 대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중 무엇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더 효과적인지를 두고 오랜 시간 많은 학자가 논쟁을 벌였다. 재정정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추진되면서 공공부문 부채를 크게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민간부문 사업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재원들이 공공분야에 집중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상승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통화정책이 경제 문제 해결사로 등장했다. 여러 국가가 통화정책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채무상환 비용은 하락했다. 덕분에 차입자(정부·기업·가계)가 큰 수혜를 입었다. 완화적 통화정책의 이점에도 부수적 피해 역시 만만치가 않다. 공격적 통화정책의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양적 완화·마이너스 금리 정책 이후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실현 가능한 한 가지 방안은 ‘헬리콥터 머니’다. 이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마구 뿌리듯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정책을 말한다. 찍어낸 돈은 정부가 직접 지출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양적 완화가 은행이라는 창구를 통해 대출을 늘리거나 추가 현금을 끌어안는 방식이라면 헬리콥터 머니는 즉각적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수단인 셈이다.

물론 헬리콥터 머니의 단점은 많다. 다만 여러 요소가 충분히 고려된다면 헬리콥터 머니는 전 세계 경제의 돌파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헬리콥터 머니 도입 과정에서 시장 반응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한다. 헬리콥터 머니가 핵폭탄 공격과 같은 최후의 수단으로 시장 내에서 인식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헬리콥터 머니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재정계획에 특정 조건을 부과하고 지출 방향의 주도권을 쥔 기관이 중앙은행이 된다는 점을 시장에 제대로 상기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갑작스러운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운용의 묘를 잘 살려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활용해 이 같은 위험을 사전에 충분히 예방해야 한다.

헬리콥터 머니는 양적 완화 정책보다 우수한 경기부양 수단이다. 전 세계는 낮은 경제성장률로 고통받고 불평등에서 비롯된 심각한 정치적 이슈에 직면해 있다. 물론 헬리콥터 머니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더 실용적인 대안은 될 수 있다. 당장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경기 침체를 맞닥뜨리고 나서야 서둘러 실행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