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미디어부장
최근 뉴욕타임스(NYT)에서 e메일 한 통이 왔다. 미중 관계, 경제 뉴스 등 통찰력 있고 다채로운 콘텐츠들이 즐비하다며 재구독을 권유했다. 얼마 전 1년 구독 기간이 만료됐던 터였다.
그동안 내가 즐겨봤던 뉴스나 칼럼 카테고리 중심의 표본 기사였다. 이른바 개인별로 맞춤화한 상품(personalized item)이다. 지난 2014년 ‘디지털 퍼스트’를 표방하며 기존 신문체제를 온라인 중심으로 확 바꿔버린 NYT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NYT 본사 1층 로비에는 자사 기사에 대한 댓글이나 독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수백개의 모니터가 24시간 돌아간다. 15층에는 1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NYT 기자가 탐사기획 보도 등으로 수상한 퓰리처상 수상작품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의 권위를 기반으로 인터넷 시대에 맞게 탈바꿈하는 NYT를 보여주는 상징적 풍경화다.
인터넷 환경으로 신문산업이 쇠락하면서 미국은 2008년 이후 700개의 신문이 사라졌다. 시카고트리뷴·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 등 전통 유력지들도 맥없이 무너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인터넷 기업 아마존에 인수돼 NYT와 디지털 혁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미국에서 신문협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신문(newspaper)을 버리고 ‘뉴스미디어 연합회’라는 명패로 바꿔 달았다. 200여년 된 영국 전통 유력지 가디언은 올해 신문 발행을 중단했다. 손자로부터 “할아버지, 신문이 뭐야 ?”라고 들을 날도 머지 않았다.
PC를 넘어 스마트폰 발달로 뉴스 소비의 플랫폼도 다양해지고 있다. 버즈피드 등 독자와 민첩하게 소통하는 신생 인터넷 언론이 급성장하고 있고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들은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을 통해 기사를 뿜어내고 있다.
한국 언론은 이 같은 세계사적 변혁 속에서 어디쯤 있을까. 한마디로 암울하다. 무엇보다 개별 언론사마다 독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쌍방향 소통을 통해 독자의 니즈를 파악하려면 독자 분석에서 시작해야 한다. 일반 기업이 소비자 분석을 통해 제품의 기획과 생산·판매를 하듯이 언론도 자사의 독자를 파악해야 콘텐츠 방향과 기획·생산이 제대로 설 수 있다. 하지만 뉴스 소비를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 플랫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독자와의 소통은 막혀버렸다. 인터넷 포털은 모든 독자의 니즈와 취향, 소비 패턴 정보를 축적하며 ‘괴물’이 돼가고 있다. 오죽하면 ‘네이버 기자’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겠는가.
대신 가십성 연예 등 휘발성 짙은 기사로 의미 없는 클릭만 유도하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말로는 언론사마다 디지털 저널리즘의 시대가 오고 있다며 ‘디지털 혁신’을 외친다. 하지만 그 구호에 절박함과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는 확실치 않아 보인다. 아직 돈이 되는 곳이 온라인이 아니라 현재까지는 기존 신문의 광고 등 오프라인 영역이기 때문에 디지털 혁신에는 한발만 어정쩡하게 걸치고 있는 형국이다.
다행히 일부 언론사를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디지털 혁신을 전사적으로 감행(?)하는 곳이 나타나고 있다. NYT처럼 기존 오프라인 편집국 체제를 폐기하고 디지털 중심으로 확 뜯어고친 것이다. 편집국 내 일개 디지털 부서를 두는 게 아니라 편집국 전체를 디지털 편집국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뉴스 소비 패턴을 분석해 24시간 빠른 뉴스를 전달하는 팀과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장점인 심층 기획 보도를 하는 팀 등 2개로 뉴스룸을 나눴다.
하지만 대다수 기존 언론은 팔짱을 끼고 앞선 시도를 하는 매체 추이를 지켜보고만 있다. 남미 에콰도르에서 1,000㎞ 떨어진 곳에 갈라파고스라는 제도가 있다. 이 섬들은 근세기까지 대륙으로부터 수만년간 독립된 환경에 처하면서 땅거북 등 그 지역 특유의 동식물이 번성했다. 하지만 외래종이 들어오는 등 환경 변화에 처하면서 멸종의 운명을 맞았다. 한국 언론이 한국 경제 구조 특유의 환경과 온실에 안주해 갈라파고스 섬이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y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