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복합 캠퍼스 단지는 통유리가 건물 외관 대부분을 감싸고 있다. 얼핏 봐서는 평범한 건물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 내외부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느껴진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서울시립대. 캠퍼스 정문을 통과해 오른쪽 길로 100m 정도 들어가면 유리가 외관을 감싸고 있는 건물과 마주한다. 마땅히 주 출입구라 불릴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어 헤매는 것도 잠시. 차량이 다니는 주도로와 맞닿아 있는 붉은빛의 나무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건물 곳곳으로 진입할 수 있다.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넓은 광장을 통해 내외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 건물. 법학관과 체육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서울시립대 캠퍼스 복합단지가 그 주인공이다.
공간 단절 없이 연결된 2개 동의 건물
사용자 의도 따라 내부공간 변화가능
건물의 첫인상은 얼핏 보면 평범하다. 통유리가 건물 외관 대부분을 감싸고 있다는 점을 빼놓고는 특별한 점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건물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 내외부를 이동하면서 느낀다.
크게 보면 체육시설인 웰니스센터와 법학관 두 개의 동으로 구성된 건물을 들어가고 나올 때 모든 이동 경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주 출입구를 특별히 두지 않은 덕분이다. 건물 곳곳에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마련돼 있어 공간의 단절을 느낄 새가 없다. 복도 끝에 위치한 계단 역시 개방감을 강조해 이동자 간의 소통이 가능하게 했다.
건물을 설계한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개인적으로 이 건물을 계획할 때 내부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했다”며 “학교 내에 위치한 건물인 만큼 어떤 과나 시설이 들어와도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동시에 사용자들이 공간 곳곳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고 말했다.
건물은 크게 보면 체육시설인 웰니스센터와 법학관, 두 개의 동으로 구성된다. 두 공간은 수많은 출입 경로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지만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공공성 확보한 건축 설계
체육관 옥상이 소통과 휴식·이동공간
기존의 고정관념 깬 공간구성 돋보여
외관이 평범해 보인 또 다른 이유는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썼던 나무 데크로 구성된 커뮤니티 공간이 마치 건물의 일부가 아닌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위치한 탓이다. 웰니스센터와 법학관이라는 전혀 다른 역할의 공간은 웰니스센터 옥상에 넓게 설치된 나무 데크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 공간은 법학관 가장 높은 층부터 차량이 다니는 주도로까지 길게 연결돼 있다. 일반적인 체육관 옥상이 돔 형태로 구성돼 활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체육관 옥상을 소통과 휴식·이동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공공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는 건물을 처음 계획할 당시부터 의도된 모습이었다. 건축주인 서울시립대는 장 소장에게 법학관과 일반 강의실, 체육관 세 곳이 어우러진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것 외에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장 소장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건물 설계를 해나갈 수 있었다. 그는 “웰니스센터 내에 마련될 테니스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많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된 목표가 있었다”며 “체육관 옥상의 나무 데크 계단이 차량이 이동하는 1층 도로까지 연결되는 것도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건물과 마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썼던 나무 데크로 구성된 커뮤니티 공간은 웰니스센터 옥상에 마련됐다. 법학관 가장 높은 층부터 차량이 다니는 주도로까지 길게 연결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설계자 의도 알아주는 사용자들
야외 강의·작은 공연 펼쳐지는 나무데크
학생은 물론 인근 주민 즐겨 찾는 쉼터로
건물을 설계하는 이들이 가장 보람될 때는 아름다운 미관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설계자의 의도 이상으로 사용자들이 건물을 활용하는 경우일 것이다. 서울시립대 캠퍼스 복합단지가 바로 그런 사례다.
소통 공간으로 사용되기를 기대했던 나무 데크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구름다리와 이어지는 넓은 무대에서는 야외 강의나 소규모 공연도 진행된다. 웰니스센터 내의 헬스장 앞에서 만난 김씨(24·국사학과 4학년)는 “체육관 옥상의 나무 데크는 계단으로서의 주된 역할에 더해 학생들을 서로 이어주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대학생활 내내 날씨가 맑은 날이나 저녁 즈음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나무 계단에 앉아 수다를 떨곤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의도된 공간의 기능이 명확하게 드러난 점이 주효했다. 당시 심사에 참여한 위원들은 “건물 지하에서 고층까지 연결되는 데크의 기능이 명확하다”며 “교육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로 느껴진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일반적인 체육관 옥상이 돔 형태로 구성된 것과 달리 웰니스센터 옥상은 겉으로 보기에 평평한 모습이다.
■ 설계자 인터뷰 -장윤규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소장
“외적 디자인 집착하기 보다 건물 개념 설정하는 게 우선”
“설계를 할 때마다 프로젝트에 맞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뛰어듭니다. 건물이 들어갈 위치나 쓰임새, 사용자들의 연령대나 특성 등을 모두 고려해야 좋은 건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립대 캠퍼스 복합단지는 설계 당시 정했던 목표가 잘 실현된 건물이라고 자부합니다.”
성북구 운생동 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난 장윤규(사진) 소장은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건물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그 건물이 도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그런 생각은 새로운 건물을 설계할 때마다 도시와 건물의 관계를 생각하며 적합한 목표를 설정하게 만들었다.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 장 소장의 특성 때문인지 건축사사무소 건물 역시 일반적인 사무실의 모습과는 달랐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어서다. 1층 대문을 통과하면 바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오고 그 길의 끝에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마당 정원이 펼쳐진다.
장윤규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소장.
그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원이 있는 곳을 사무실로 정하게 됐다”며 “밖에서 보기에는 영락없는 단독주택이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업무공간으로서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건물 사용 방식이나 특징보다는 미적 디자인 등에 집착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장 소장의 철학은 뚜렷했다. 설계하는 건물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먼저 설정해야만 좋은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설계를 하다 보면 각종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탓에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먼저 건물의 개념을 정하고 그에 맞춰 형태를 완성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건물을 설계해나가는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장 소장은 “우리만의 건축, 나만의 건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크게는 한국 건축의 독창성, 작게는 나의 독창성을 확실히 찾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