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스토리] 석재원 엠즈씨드 대표 "매일유업 평사원 입사..38세에 커피브랜드 자회사 CEO 됐죠"

■프리미엄 커피점 '폴바셋'의 돌풍
아내와 연애때도 주스만 마셨는데...
입사 8년차에 커피 담당 부서 배치
새 분야 도전 마음으로 주경야독
한국인 선호 맛 연구해 신제품 개발
타사보다 20% 비싸도 입소문 자자
■12년만에 평사원서 계열사 대표로
2013년 20호점 돌파한 폴바셋팀
매일유업 자회사 엠즈씨드로 분리
김정완 회장 '석 팀장' 대표 발탁
직영점 83호까지 내며 성장세 지속

석재원 엠즈씨드 대표이사/권욱기자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동물이 좋았다.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고 저마다 다른 특성과 습성을 지닌 이유가 마냥 궁금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곤충 채집을 방학 숙제로 내면 항상 1등을 도맡았고 동물원은 아무리 자주 가도 질리지 않았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전공을 선택할 때도 별로 고민이 없었다. 주위에서는 생명공학이 앞으로 유망하다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소년은 인기가 없던 낙농학과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 졸업 후 매일유업에 입사한 것도 어쩌면 그에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택해야 잘할 수 있다는 신념도 적잖이 작용했다.

회사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소처럼 묵묵히 일했다. 늘 즐거울 수는 없어도 긍정의 힘을 믿고 최선을 다했다. 영업·마케팅·기획 등을 두루 거치면서 실무와 이론을 갖춰갔다. 모르는 것은 공부하고 아는 것도 더욱 공부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입사 8년이 되던 해 커피 브랜드를 담당하는 부서로 배치됐다. 커피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이라 생각하고 주경야독으로 커피 공부에 뛰어들었다. 4년 후 커피 브랜드는 자회사로 분리됐고 소년은 38세의 나이에 대표에 올랐다. 프리미엄 커피전문점 ‘폴바셋’으로 국내 커피시장에 돌풍을 불러온 석재원 엠즈씨드 대표의 얘기다.

석 대표는 매일유업 외식사업부 폴바셋팀장을 맡았던 날을 지금도 틈만 나면 떠올린다.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았기에 커피는 무엇보다 생소하고 난해한 분야였다. 10여년 가까운 직장생활 동안 우유라는 한우물을 팠던 터라 아예 새로 회사에 입사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당시 매일유업이 외식사업에서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어깨는 더욱 무거웠다.

“아내와 연애할 때 커피전문점에는 자주 갔어도 저는 늘 커피 대신에 주스를 마셨어요. 서울에서 자랐지만 커피는 너무 도시적인 음료라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당시에도 국내 커피시장은 포화라는 지적이 많았기에 폴바셋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이 앞섰습니다.”

당시 폴바셋은 서울에 2개 점을 갓 낸 커피전문점시장의 후발주자였다. 이미 스타벅스(신세계), 엔제리너스(롯데), 투썸플레이스(CJ)가 3강 체제를 펼치면서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저가 커피로 눈을 돌려도 이디야커피를 선두로 수많은 브랜드가 포진하고 있어 도무지 틈새시장이 보이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무작정 미국의 농장으로 건너가 1년 동안 목부로 일했을 만큼 산전수전을 겪은 그가 인생 최대의 난관에 봉착한 순간이었다.

석 대표는 프리미엄 커피전문점을 승부수로 내걸었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커피로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아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려면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주말에는 전국의 유명한 커피전문점을 찾아다니며 한국인이 좋아하는 커피 맛을 연구했다.

“커피를 공부하다 보니 한국인은 로스팅을 조금 과하게 해서 쓴맛이 나는 커피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쓴맛이 강하면 우유나 시럽 등을 넣었을 때는 맛이 괜찮지만 아메리카노로 마시면 원두 본연의 풍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요. 경쟁 브랜드의 아메리카노보다 쓴맛이 덜하고 원두 고유의 개성을 살린 폴바셋의 아메리카노 메뉴 ‘룽고’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커피시장 후발주자에 머물렀던 폴바셋은 소비자의 입소문을 타며 커피 마니아를 사로잡았다. 가격은 경쟁 브랜드보다 20%가량 비쌌지만 폴바셋 커피를 맛보려는 고객들로 매장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별다른 마케팅에 나서지 않았는데도 한번 폴바셋을 찾은 손님들이 주위에 소개하면서 폴바셋은 커피전문점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석재원 엠즈씨드 대표이사/권욱기자
폴바셋 20호점을 막 돌파한 지난 2013년 매일유업은 또 한번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이 폴바셋팀을 자회사 엠즈씨드로 분리하고 석 팀장을 엠즈씨드 대표로 발령한 것이다. 입사 12년 차에 불과한 평사원을 계열사 대표에 앉힌 파격적인 인사였다.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엠즈씨드는 이후 인력 확충과 조직 정비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외형 확대에 나선다. 이듬해 40호점을 돌파하고 지난해에는 70호점까지 열었다. 올 들어서도 83호점까지 내며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모든 매장이 가맹점이 아닌 직영점으로만 운영되는 것도 폴바셋의 특징이다.

“지난달 기준으로 스타벅스가 국내에 930개의 매장을 갖고 있고 엔제리너스도 889개나 됩니다. 그에 비하면 폴바셋은 10분의1 수준에 불과하죠. 규모에서는 대기업 커피전문점에 비해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대신 고객들의 브랜드 충성도는 어느 경쟁사 못지않다는 게 폴바셋의 강점입니다. 앞으로도 양적 성장보다 내실 위주의 전략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석 대표는 폴바셋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던 배경으로 유업계에서 선도적인 전략을 펼쳐온 매일유업의 유전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프리미엄 커피전문점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하고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매일유업의 ‘혁신 DNA’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매일유업에는 실패하더라도 먼저 시도해보자는 조직문화가 있습니다. 우유 섭취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국내 최초로 유당(락토오스)을 제거한 우유를 출시한 것이나 체험형 농촌테마파크 상하농원을 선보인 게 대표적이죠. 이 모두 수익성을 따졌으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커피시장에서도 매일유업은 이미 1997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컵커피 브랜드 ‘카페라떼’를 선보였습니다.”

다만 커피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대만큼 실적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점이 석 대표에게 주어진 과제다. 폴바셋은 지난해 48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1억8,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9억9,000만원과 11억3,0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둔 것에 비교하면 외형은 커졌지만 수익성은 떨어졌다는 얘기다.

“앞으로 커피전문점은 커피와 음식을 함께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할 것입니다. 커피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서양이나 일본에 비해 한참 낮습니다. 제대로 된 커피를 선보인다는 폴바셋의 초심을 그대로 이어가 2020년에 매장 200개와 연매출 1,700억원을 달성하겠습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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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서울 △1995년 마포고등학교 졸업 △2000년 건국대 낙농학과 졸업 △2001년 매일유업 기획실 △2011년 매일유업 외식사업본부 폴바셋팀장 △2013년 엠즈씨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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