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의도대로 제어하는 게 웨어러블 로봇 기술의 최대 과제"

'국내 웨어러블 로봇 선구자' 한창수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 인터뷰

국내 웨어러블 로봇 개발의 선구자인 한창수 교수는 실험실 창업기업 ‘헥사시스템즈’를 설립했다. 그는 팔과 다리가 한데 붙어 있는 전신착용형 로봇을 개발했다.
국내 웨어러블 로봇 연구는 2000년대 들어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웨어러블 로봇의 쓰임새가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작업능률을 높여 노동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고령자 등의 근골격계 질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에는 웨어러블 로봇의 다양한 활용성에 주목한 기업들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상용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웨어러블 로봇 연구의 선구자는 한창수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웨어러블 로봇 연구가 한창수 교수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 현대차그룹이 2010년 국책 과제로 수행한 ‘착용식 근력증강로봇 기술 개발’ 사업도 한 교수의 연구 지도로 이뤄졌다.

지난 8월 11일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ERICA· 학·연·산 클러스터) 캠퍼스에서 한창수 교수를 만났다. 한창수 교수는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를 나온 뒤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교에서 기계공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당시에는 학계에 로봇공학 전공이 없었다). 1990년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2013년 한양대학교에 로봇공학과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 교수가 웨어러블 로봇을 처음 접한 건 1997년이었다. 한 교수가 말한다. “당시 교환교수로 미국 UC버클리대학교에 갔어요. 마침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 개발 프로젝트를 발주했습니다. 그때 프로젝트를 따낸 두 팀 중 하나가 바로 UC버클리의 호마윤 카제루니 교수팀이었습니다. 팀당 10년간 매년 100만 달러를 지원해 주는 엄청난 프로젝트였어요. 그걸 보고 난 뒤에 웨어러블 로봇과 관련한 논문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양대학교로 돌아온 한 교수는 학생들과 웨어러블 로봇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학계에서는 웨어러블 로봇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2004년 그는 다시 UC버클리로 날아갔다. “카제루니 교수가 웨어러블 로봇 시제품을 내놓았는데 저한테는 안보여주더라고요. 큰 자극이 됐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웨어러블 로봇 연구에 매달렸어요.”

한 교수는 2006년부터 연구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노약자나 장애인의 근력을 보조해 주는 외골격 로봇 ‘헥사(HEXAR)’를 처음 선보였다. 2011년에는 이 로봇을 상용화하기 위해 ‘헥사시스템즈’라는 실험실 창업기업을 설립해 팔(상지)과 다리(하지)가 한데 붙어 있는 전신착용형 로봇을 개발했다. 상지근력증강 로봇은 간단한 동작으로 최대 40kg의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고, 하지근력증강 로봇은 최대 40kg의 짐을 등에 지고 시속 6.5km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한 교수가 말한다. “상지와 하지를 모두 연구·개발하고 있는 연구자는 드뭅니다.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하지에 상지가 붙을 경우 하지는 하중을 받습니다. 따라서 하지에서 동력 손실이 일어나요. 그렇다고 하지만을 위해 무작정 큰 동력원을 부착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요. 웨어러블 로봇이라고 하면 울퉁불퉁 대단하게 생긴 것처럼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들은 실패작입니다. 사람 몸에 착용한 뒤 그 위에 옷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얇고 가늘고 작게 만드는 게 핵심 기술입니다.”


한창수 교수가 설립한 헥사시스템즈의 웨어러블 로봇은 세계 수준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지난해 국제 병원의료산업 박람회가 열렸을 당시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가 이 회사의 로봇을 입고 걷는 것이 방송되어 화제를 모았다. 방송에 나온 환자는 “저희 같은 사람들은 일어서는 게 꿈입니다. 그런데 버튼 하나 눌러서 자리에서 일어서고 걷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 교수는 웨어러블 로봇의 일부 기능을 활용해 어깨나 무릎 재활기구도 개발해 상용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 교수가 말한다. “아마 내년 4월경이면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겁니다. 인증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래요. 실제 개발은 끝난 상태입니다.”

한 교수는 “웨어러블 로봇이 사람과 로봇의 장점만을 결합한 형태로 ‘머리’ 역할은 철저하게 사람이 하면서 의도대로 로봇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뇌파로 로봇을 제어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여러 센서를 이용해 착용자의 의도를 확실하게 파악해 민감하게 반영해야 합니다. 뇌파만을 가지고 제어하다 열 번 중 한 번만 의도를 잘못 파악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최근에는 여러 기능을 가진 웨어러블 기기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합쳐 놓으면 조금 더 쉽고 안전하게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개발 비용도 줄겠죠.”

국내 웨어러블 로봇 기술은 몇 년 사이에 급성장하며 미국, 일본 등 주요 로봇 선진국을 따라잡으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용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심부품 같은 기반기술은 아직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로봇 산업 전반의 과제로 남아 있다. 수출을 고려한다면 표준화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부품 분야는 국내 어느 산업 분야나 마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액츄에이터나 센서를 모두 수입해서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특정 부품이 필요한 산업 분야가 커지면 국내 업체에서도 개발에 나설 겁니다. 이건 시장의 수요와 공급 문제에요. 그보다는 웨어러블 로봇의 표준화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우리도 참여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 역시 국내에서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어 표준화를 위한 국제회의에 꾸준히 참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상용화의 걸림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죠.”

한 교수는 지난 8월 마지막 주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냈다. 전 세계 톱클래스 웨어러블 로봇 연구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국내에도 이런 연구자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웨어러블 로봇 관련 학회가 없어요. 의외죠? 연구자들이 서로 기술을 공유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미 많은 웨어러블 로봇이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어요. 어영부영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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