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카카오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개장 첫날인 지난 7월 2일. 매장 앞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카카오프렌즈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하는 인파다. 긴 기다림을 마치고 캐릭터로 가득 찬 매장 안에 들어선 사람들은 ‘꺄~ 너무 귀여워’라며 쉴새 없이 감탄사를 늘어 놓는다. 특히 ‘라이언 덕후’를 자청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대체 라이언이 어떤 매력이 있기에 사람들은 열광하는 걸까.
라이언은 카카오프렌즈의 막내다. ‘소녀처럼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라이언은 지난 1월 22일 발매된 이후 줄곧 다운로드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 동글동글한 얼굴, 일자 눈썹이 얼핏 보기에는 곰 인형을 형상화한 것 같지만 라이언은 갈기가 없어 콤플렉스를 가진 숫사자다. 등장 배경도 재미있다. 둥둥섬의 왕위 계승자였으나 자유로운 삶을 동경해 탈출했다는 설정이다. 현실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실천할 용기는 가지지 못하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묘한 쾌감을 준다. 게다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나를 찾기 위해 떠나기로 결정했다니.
라이언이 가진 일련의 스토리는 캐릭터에 친근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서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 그리고 스토리에 몰입한 사람들은 서슴없이 지갑을 연다. 단순히 귀여운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다.
덩치는 크지만 여리고, 무뚝뚝하지만 친구들을 위로하는 모습에서는 반전 매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라이언 덕후를 자청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는 친구 옆에서 말없이 우산을 씌워주거나 머리를 토닥이는 모습에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김선영(27·여)씨는 “조언이라는 이유로 훈계를 늘어놓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이 없다”며 “무슨 얘기든 가만히 들어줄 것 같은 게 라이언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라이언의 설정을 감안하면 그는 수다 떨기보다 듣기에 최적화된 캐릭터다.
경청의 위로 효과는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우울증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경청을 꼽았다.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그가 내 말을 듣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잊지 못할 정도”라며 “그런 집중력을 본적이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며 영혼을 파고드는 응시였다”고 고백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경청의 대상이 사람이 아닌 이모티콘이라는 점이 인간관계의 단절이 부른 병리적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를 찾아 나서는 번거로움 대신 무생물을 택하는 이유가 사회적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인형을 친구 삼아 이야기하는 건 다들 어렸을 때 한 두 번 쯤 해봤던 일이다. 꼭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끔은 섣부른 충고나 조언에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다 털어놓고 나면 가슴 한 켠이 후련해지곤 했다. 구석에 남은 찌꺼기까지 깨끗이 밖으로 내보낸 산뜻함을 느껴봤다면 위로받는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인형이면 어떻고 이모티콘이면 어떤가. 현실을 박차고 일어날 용기가 없어서 대리만족한다면 또 어떤가.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한데.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