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회사가 거지같다고? 당신이 아니라 회사가 잘못된 것"

직장인의 웃픈현실 그린 '사축일기' 저자 강백수를 만나다

영업2부의 9개월 차 인턴부터 부장까지 함께 탄 차가 바다로 떨어진다. 무인도에서 눈을 뜬 이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인데 ‘부장이고 나발이고’ 계급장이 웬 말인가. 생존능력은 바닥인데도 완장만 차고 앉아있는 부장에게 대드는 부하 직원들. 이들은 가까스로 구조되지만 한번 무너진 위계질서를 다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업2부는 해체되고 조직을 떠난 이들이 모여 읊조린다. ‘회사생활이 표류야 표류’

요즘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축일기’ 속 단편소설 ‘영업2부 표류기’다. 능력은 없는 주제에 대접만 받으려는 부장, 거기에 아부하는 차장, 연애에 정신이 팔린 과장과 막내 (인턴)사원의 모습은 누구나의 직장에 한 명씩은 있을 법한 인물들. 이들이 처한 상황은 극적이지만 우리가 ‘살아낸’ 어제, 그리고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다수는 ‘회사생활이 표류’라는 구절에 무릎을 탁 친다. 회사에 길들여진 가축이라는 ‘사축’이라는 표현부터가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는 신조어).

이 책을 쓴 이는 시인 겸 가수 강백수(28·본명 강민구) 씨다. 직장생활이라곤 1년 남짓 종합학원에서 강사 일을 해본 게 다인 그가 사원부터 부장까지 공감할만한 직장인 이야기를 써낸 점이 아이러니했다. 특히나 이름이 백수라니(그는 2010년 데뷔 때부터 강백수라는 이름을 썼다).

‘우리 회사의 7대 불가사의(아래 참조)’ 등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글귀들을 가감 없이 쓴 그의 주무기는 술과 공감능력. 월급쟁이인 그의 친구들은 술 한잔이면 오늘 하루 그들이 회사에서 부딪혔던 난관, 고민, 그리고 가장 미운 상사와 후배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장삼이사의 하소연이 강백수를 거쳐 ‘직장인류’ 보편의 이야기로 다듬어졌다.
<사축일기>를 쓴 강백수 씨는 “직장인들에게 ‘회사가 거지 같은 건 당신 탓이 아니라 회사가 잘못 해서’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5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본 강 씨는 그가 쓴 책과 노래만큼이나 진솔하고 담백했다. 강 씨는 “대중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모든 고통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느니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느니’ 훈계하는 서점가 풍조가 정말 쓸데없게 느껴졌다”며 “당신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회사가 거지 같은 건 당신이 못 나서가 아니라 구조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불효자가 되고 싶지 않지만 불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라면 들어볼만한 강백수밴드의 노래 <타임머신> 뮤직비디오.

/서은영기자 supia927@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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