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은 음성으로 현재 시각을 알려주거나 점자로 표시되는 손목시계를 좋아할까. 답은 '아니요'다. 음성시계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를 단박에 알아차리게 돼 꺼리고 점자를 완벽하게 습득하지 못한 장애인은 불편함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명 촉감시계로 불리는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개발해 전 세계 스타트업 업계의 주목을 받은 김형수(35·사진) 이원타임피스 대표도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벽을 깨고서야 소비자의 욕구를 제대로 보는 눈을 갖게 됐다.
그는 최근 서울 신촌 이화여대에서 중소기업청·창업진흥원 주최로 열린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타트업 바이블포럼'에서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자기 마음에 들도록 만들려고 몰두하지 말고 그것을 사용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사는지 삶을 들여다보도록 노력하라"며 "창업은 아이디어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촉감시계 발상은 김 대표의 MIT 경영대학원 재학 시절 강의실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옆자리 시각장애인 학생이 집요하게 시각을 물어보는 통에 장애인들이 사용할 마땅한 시계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안 것. 그는 MIT 공대생들을 끌어모아 시계 개발에 나섰고 3개월 만에 점자방식 시계를 고안해냈다. 시장조사를 위해 MIT가 있는 보스턴의 한 시각장애인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는 충격을 받았다. "시각장애인 중 15% 정도는 점자를 모르고 사고 후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만큼 촉각이 발달하지 않았다며 불평을 쏟아냈어요. 게다가 점자시계의 소재가 값싼 플라스틱이냐, 손목 줄은 무슨 색깔이냐고 물었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시각장애인도 디자인이 멋있고 비(非)장애인들처럼 손쉽게 쓸 수 있는 시계를 원한다는 것을."
점자시계 설계안은 곧바로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지난 2011년 MIT를 졸업한 김 대표는 연구개발(R&D)을 이어갔으며 마침내 2년 만에 티타늄 소재의 원반형 브래들리를 내놓았다. 원반 홈을 따라 굴러가는 구슬 2개를 만져 시·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고 감각적인 디자인 덕분에 비장애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김 대표는 "가령 장인과 식사하는 사위처럼 시계를 들여다볼 수 없는 상황에도 시각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라며 "기본적 욕구를 해소시킨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셈"이라고 말했다.
2013년 그는 다수의 개인 투자금을 모으는 방식인 크라우드펀딩으로 브래들리 시계를 선보였는데 당초 목표로 한 4만달러를 단 하루 만에 달성했으며 한 달 동안 전 세계 65개국 4,500여명이 펀딩에 참여해 총 60만달러를 모았다. 현재 3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김 대표는 "촉감시계는 단지 한 스타트업의 성공한 상품에 그치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시계 이름은 2011년 아프가니스탄 참전 중 시력을 잃은 미 해군 장교 브래들리 스나이더의 이름을 땄다. 수익의 20%는 안내견 단체 등을 후원하는 데 쓴다.
그는 MIT 졸업 후 1년 동안 마땅한 수입이 없어 차를 팔아 산 자전거로 보스턴 집에서 사무실까지 1시간 거리를 매일 출퇴근했다. 그는 스타트업 예비창업자들에게 "창업이 궤도에 오르기 전 재정적·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직면한다"며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함께 용기를 북돋으며 공감하는 데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디자인·수학에 소질이 없다고 말한 김 대표는 미리 자신의 한계를 짓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찾고 또 찾으면 해결책이 나온다"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초심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