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가계부채의 또 다른 뇌관인 집단대출 관련 부실을 막기 위해 집중관리에 돌입했다. 집단대출은 신규 아파트 분양 시 계약자가 치러야 하는 중도금이나 잔금 등을 주택금융공사 등의 보증을 통해 분양가의 70%까지 빌려주는 대출상품이다. 여타 대출에 비해 금리는 저렴한 반면 개별 계약자에 대한 소득심사를 거치지 않고 총부채상환비율(DTI)도 적용받지 않아 일반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부실 우려가 높은 편이다.
9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들은 집단대출과 관련한 심사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집단대출 실태점검에 나서는 등 부실 우려와 관련한 경고음이 계속 제기되는 탓이다. 무엇보다 각 은행들이 대기업 여신 관련 부실 우려로 내년도 경영계획을 보수적으로 세워둔 상황에서 기업 여신 대비 관리가 용이한 집단대출 사전관리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집단대출의 경우 지방에 있는 고객과 경기 움직임에 취약한 조그마한 시공사들이 부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이전부터 관리를 잘해온 편이지만 이달 들어 보다 깐깐하게 관리해줄 것을 직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지난 9월부터 집단대출 부문이 과도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해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며 "분양시장에서 실수요뿐 아니라 투기 목적의 수요까지 감지되고 있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집단대출에 대한 실태점검에 나서기 전 이미 은행들이 이상징후를 감지하고 심사를 강화하는 등 대출 자제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집단대출이 최근 크게 늘어나 점검에 나섰더니 시중은행들이 이미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 상태였다"며 "은행 측에서 '우리도 대출하기가 겁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시중은행들은 무엇보다 일부 지방의 분양물과 관련해 분양가에 거품이 끼었다고 판단,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시세차익을 노린 '묻지 마 청약'이 은행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집단대출 시 이자후불제나 중도금 무이자 등을 활용, 원리금 상환능력과 상관없이 분양권 프리미엄만을 노린 채 분양신청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2007년과 비슷한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우려하고 있다. 2007년 수도권 외곽지역의 분양 아파트에서는 집값이 분양가에 비해 낮아지자 일부 계약자들이 웃돈을 얹어주며 분양권을 손절매한 바 있다.
부동산시장 전망도 좋지 않다. 부동산시장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세계적 저성장 기조 고착화로 올 들어 과열 양상을 보인 부동산 가격이 다시 하락할 것이라고 점치는 이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부동산114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에 비해 0.35% 상승하는 데 그치는 등 부동산시장 전체가 가격 조정에 들어간 모습이다.
집단대출이 아직 위험 수위에는 도달하지 않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지만 주택담보대출에서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분양시장 호조로 올 들어 증가한 중도금 집단대출 규모만 9조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9월을 기준으로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 중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7.3%에 불과했지만 9월 한 달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중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8.2%에 달했다. 집단대출이 가계대출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분양시장과 관련해 금융당국이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각 사업자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이해관계가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전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양철민기자 chop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