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워치]투명사회 가는 길...눈물 흘리는 자영업자

김영란법으로 곳곳 변화조짐
'청렴사회' 국민지지 크지만
손님 발길 뚝.화환행렬 사라져
한정식집.화훼농가 등 한숨

10곳 남짓한 한정식집이 몰려 있는 서울 광화문 서울지방경찰청 뒤편 골목의 한 음식점. 지난주 말 저녁 서울경제신문이 만난 이 음식집 대표 A씨는 “그동안 집 두 채 팔아먹고 이제 겨우 자리를 잡는가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같은 날 만난 서소문 소재 유진참치의 최종명(61) 사장은 “큰 틀에서 보면 김영란법으로 각자 계산할 경우 서로 부담이 없고 좋은 것은 맞다”면서도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그 사람들이야 안 먹으면 그만일 수 있는데 우리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은 어떡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부정부패를 끊고 청렴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변화의 조짐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당장 국정감사 중인 국회의원들부터 ‘더치페이’를 하고 결혼식장에서는 과거와 같은 축하화환 행렬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김영란법의 기본적 취지는 부정부패를 차단하고 반칙을 몰아내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도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다소 진통을 겪더라도 한국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목돼온 관공서 인근의 한정식집·화훼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 시행 초기 시범케이스로 걸리지 않기 위해 ‘몸조심’을 하겠다는 분위기가 관가·언론계·교육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소비심리 위축이 우려되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변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과거에도 공익적 목적을 위해 시행된 제도들이 해당 업종의 자영업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례가 많다. 실내금연정책, 학원심야영업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A씨는 “투명한 사회의 중요성을 잘 알고 그렇게 돼야 한다는 데 100% 동의한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걱정”이라며 “우리도 서민인데 정부나 사회에서 형편을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씨의 업소는 1인당 평균단가 3만원 수준의 해산물요리를 전문으로 해 은밀한 접대장소로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전통시장까지 김영란 법 충격 확산”…피해업종 지원책 세워야

2007년 학원 심야영업 규제로 군소학원가 날벼락


2013년엔 실내금연 시행에 PC방 등 줄줄이 폐업

정책유탄 튈 때마다 해당업종 자영업자 벼랑끝 몰려



과거에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시행되거나 바뀐 제도로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현 보건복지부)는 금연 확산을 유도하기 위해 PC방 전면금연화 정책을 국회에 건의했다가 PC방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미 정부는 전년도에 금연 칸막이를 설치하지 않으면 등록증을 내주지 않는 등 강도 높은 금연정책을 시행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법안은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2013년 시행에 들어갔다.

당시 전북 익산에서 PC방을 운영했던 오모(35)씨는 “PC방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 손님이 다 떨어져 나갔다”며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맨손으로 일군 내 첫 가게이자 5년 동안 나와 가족을 먹여 살렸던 가게인데 눈물을 머금고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PC방을 폐업하고 관련 업종인 컴퓨터 가게로 간판을 바꿨지만 결국 이마저도 접고 서른을 훌쩍 넘긴 늦은 나이에 일반 기업체에 어렵게 취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2만개에 달했던 전국 PC방은 2013년 1만3,000개 수준까지 급격히 줄었다. 반면 사정이 비슷한 당구장과 스크린골프 업소는 2015년 시행된 실내 전면금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예외업종으로 지정된 상황이다.

2007년부터 시행된 학원심야영업 규제도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 당시 정부는 사교육비를 줄여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며 학원법을 개정했다. 시도 조례가 정하는 범위에서 학원교습시간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 서울시는 시내 학원의 교습시간을 오후10시까지로 못 박았다. 영세 학원가에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주요 학원가의 대형학원은 교육청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입문 셔터를 내려놓고 ‘배짱’ 영업을 했다. 영세 학원들은 단속을 피하기 쉬운 고가의 무허가 과외방으로 전업할 수밖에 없었다.

책값을 후려치는 통신판매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 서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2014년 시행된 도서정가제도 효과는 없고 되레 대형서점의 배만 불린 정책으로 평가된다. 7월 경제장관회의에서 기획재정부가 도서정가제 규제 완화를 건의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대로 논의는 무산됐다.

김영란법의 경우 이러한 단일업종에 대한 규제에 비해 영향이 미치는 범위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음식업 등 직접 타격을 받는 일부 업종뿐 아니라 다른 업종으로까지 번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영란법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전통시장에조차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전통시장인 남성시장의 한 상인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온누리상품권을 들고 오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김영란법으로 이게 막히면 판매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김영란법 등 공익적 목적의 제도 시행으로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는 업종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국무회의에서 “청탁금지법의 기본·근본정신은 단단하게 지켜나가면서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해야 한다”며 “농수축산업·요식업 등 우려되는 부문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충격을 최소화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내각에 지시한 바 있다. 정부부처들도 고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는 상태다. 자영업자는 특성상 임금근로자와 달리 외부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어 전업유도나 자금지원 등의 대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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