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업소 대표인 개업공인중개사가 모든 거래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돼 있는 현행 ‘공인중개사법’ 조항이 중개업소의 대형화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나 전문가들이 부동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개업소의 대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 같은 제도적 문제점으로 대형화가 쉽지 않은 것이다.
현행 공인중개사법 제25조와 26조에 따르면 ‘중개대상물의 확인 및 설명과 관련해 개업공인중개사(법인의 경우 대표자, 법인의 분사무소의 경우 분사무소의 책임자)가 서명 및 날인하되 당해 중개행위를 한 소속공인중개사가 있는 경우에는 소속공인중개사가 함께 서명 및 날인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한마디로 모든 거래에 중개업소의 대표인 개업공인중개사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법 조항 때문에 중개업소가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도 좀처럼 규모를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 중개업소에 소속된 공인중개사들이 하루에 여러 건의 거래를 성사시켜 계약을 하려고 해도 개업공인중개사 대표가 모든 거래 장소를 찾아 일일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류관하 리맥스골드에셋 대표는 “거래가 우연찮게 같은 시간대에 잡힐 때가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어느 한쪽을 포기하거나 일정을 연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무실에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일거리가 늘어날 수 없는 구조이며 결과적으로 대형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반포의 한 아파트 단지에 중개업소가 밀집해 있다. /서울경제DB
개업공인중개사에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개별 공인중개사들의 역량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 대표는 “자격증만 있으면 관련 업무를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는 변호사나 세무사와 달리 공인중개사는 자격증이 있어도 개업을 하지 않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며 “이로 인해 소속 공인중개사들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구멍가게 수준인 부동산중개업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중개법인의 대형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중개업소의 전문성 부족과 부실한 서비스 등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협회가 중개 시 발생한 사고로 지급한 공제금은 지난 5년간 평균 87억원에 달한다. 장진택 리맥스코리아 이사는 “중개법인 대형화를 통해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조금 더 전문화된 중개인력에게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중개사고의 상당 부분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중개업계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대형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김상석 국토교통부 부동산산업과 과장은 “현재 법 조항대로라면 중개업소의 규모가 커질수록 업무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지금처럼 중개업소 대표가 모든 거래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직인으로 대신할 수 있게 한다든지 대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