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경련 해체론까지 나오는 현실 무겁게 받아들여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창립 5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청와대 개입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 중인 ‘미르· 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집 의혹이 불거지면서 단순한 개혁 차원을 넘어 아예 해체해야 한다는 요구에까지 직면했다. 야권은 물론 보수성향의 민간경제연구소인 국가미래연구원마저 진보성향의 경제개혁연대와 공동으로 전경련 해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회원사의 탈퇴 러시도 감지된다.


재계의 맏형 역할을 해온 전경련이 안팎으로 이런 난관에 봉착한 것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무엇보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헤쳐나가는 기업가정신을 보여주기보다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수시로 정경유착 의혹마저 불거지며 여론을 악화시켰다. 그러니 회원사들 사이에 굳이 거액의 회비를 내면서까지 전경련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경련이 이렇게까지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도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병철 삼성 회장을 비롯해 정주영 현대 회장, 구자경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이 회장을 맡았을 때는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때에는 기업 간 ‘빅딜’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러던 전경련이 2·3세대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전경련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시대 상황에 맞춘 방향 설정이다. 지금 경기침체에 따른 경제난 해소가 절실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사회적 통합과 공정성 확보도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대기업의 의사만 대변하기보다 이런 변화에 맞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재계가 무기력증을 떨치고 일어나 창업세대의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할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전경련은 해체론이 고착되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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