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영예교수가 지난 3일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식을 일본 신문이 1면에 대서특필한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01년 일본 사회과학 전문가인 샘 콜먼 박사는 일본정책연구소(JPRI)가 펴낸 ‘일본 기초과학 뭐가 문제인가’라는 보고서에서 “일본 과학계가 장기 부진에 빠져있다. 일본 연구는 서구에서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0년까지는 일본이 배출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6명에 그쳐 당시 세계 2위 경제대국이란 위상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곧 상황은 반전됐다. 2001년부터 올해까지 16명의 일본인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추가로 나와 총 22명의 수상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과감한 기초과학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6년 ‘제1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세워 5년간 무려 17조엔대의 자금을 연구개발(R&D) 담당 기관들에 투입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5기 기본계획기간 중에는 모두 26조엔을 연구개발 분야에 쏟아붓기로 했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일본은 과학기술을 경제적 가치만을 놓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주안점을 둔다”고 전했다.
오스미 요시노리(가운데)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지난 3일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도쿄공업대 총장 등과 함께 도쿄의 한 행사장에서 인사를 나누며 축사를 받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일본의 젊은 두뇌 양성정책도 기초과학발전에 한 몫 했다. 이정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은 한 보고서에서 “일본은 30대 우수 인재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5년간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평균 33세였던 점을 감안할 때 국내 핵심 연구기관들에도 젊은 피 수혈이 절실한 대목이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은 “우리나라는 대덕연구단지 등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은데 젊은 인재들을 충원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유럽 등과 활발히 국제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일본을 기초과학 강국으로 자리잡게 한 요인이다. 한 국책연구기관장은 “일본은 오래전부터 우주개발, 이론물리,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지분을 투자하고 노하우를 배우며 영향력을 높여왔다”며 “하지만 우리 정부는 국제협력사업에 대한 투자지원은 인색한데 정권이나 부처 치적을 홍보하려고 ‘한국 독자 개발’, ‘국산 연구 성과’로 포장하는 사업에 주로 자금을 집행해왔다”고 토로했다.
물론 일본에서도 대학들에서 연구인력 임용과 탐구활동 등이 출신학교 등 학벌·파벌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점은 단점으로 거론된다. 개방적인 서방권에 비해 연구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콜먼 교수는 정교수가 보스 노릇을 하는 코자(Koza)시스템이 연구자금 배분 왜곡과 집행의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질타했다.
중국도 급부상하는 추세다. ‘네이처’가 지난 7월 ‘인덱스2016 라이징 스타즈’ 자료를 통해 평가한 세계 상위 100대 연구기관 중 무려 41곳이 중국이었다. 특히 상위 1~9위를 중국이 휩쓸었다. 중국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2011~2015년 중국의 국가과학기금을 통해 투자된 과학기금은 888억 위안(14조7,000여억원)에 이르며 올해부터 2020년까지 지원액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 1993년부터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각료급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를 출범시켜 기초과학정책 등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과학기술정책실(OSTP)을 두어 예산안 편성때부터 참여하도록 했다. 과학정책의 밑그림이 나오면 국립과학재단(NSF) 등 공공기관, 대학 등이 집행하는데 연구개발 예산 중 기초과학 연구에 40% 가량이 투자된다. 미국은 대학들의 기초연구 활동 비중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독일은 주정부가 기초과학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대학과 공공연구기관 등의 독립성을 부여 정치적 외풍을 타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장기적이고 일관적인 순수연구활동이 가능한 셈이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자문기구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두고 대통령이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으나 과학 전문성이 떨어지는 예산 당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상대적으로 기초과학 연구가 후순위로 밀린다. 공공 연구기관들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 등 정치적 부침이 심해 일관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