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책임지는 55개국 이상에서 비준 요건이 충족됨에 따라 다음달 4일부터 파리기후협정이 공식적으로 효력을 지니게 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체결된 협정은 오는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새 기후변화 협약으로 ‘포스트2020’으로도 불린다. 195개 당사국이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제한하기 위해 각자 세운 목표를 달성해나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토의정서는 개발도상국을 제외한 37개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온실가스 감축 의무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새 기후변화체제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30년 배출전망치(BAU·8억5,060만CO2eq톤) 대비 37%. 이 가운데 25.7%는 자체 감축하고 11.3%는 국제시장(IMM)에서 사올 계획이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주요국의 목표를 동일한 기준을 두고 비교한 결과 우리의 감축 목표가 28%로 가장 높았다. 멕시코(21%)보다 높고 캐나다(11%)의 2배, 미국(8%)의 3배, 일본(3%)의 9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아직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3년 기준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곳은 에너지산업(42.8%). 특히 화력발전소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나라 에너지소비량은 연간 2.1% 증가하는데 맞춰 전력공급계획(7차)을 세웠다. 화력발전 단계적 폐쇄로 전력공급이 줄면 원전을 더 짓거나 에너지 발전 단가가 석탄의 두 배가량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발전 비중을 늘려야 한다. 여론이 악화된 원전과 전기료가 인상될 수 있는 LNG 발전 비중 확대는 국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해외 시장에서 사와야 하는 감축분(11.3%)에 대한 재원 마련도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
더욱이 선진국들은 포스트2020을 빌미삼아 보호무역의 벽을 더 높이 쌓을 우려도 있다. 곧바로 거론되는 제품은 우리 전체 수출 비중에서 6%를 차지하는 철강과 8%인 자동차다. 철강은 산화철(Fe2O3)에 코크스 등 탄소(C)를 넣어 산소(0)를 분리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많다. 전세계 공급 과잉에 따라 자국 철강 산업 보호에 열을 올리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이 수입 철강 규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도 배출가스 기준을 높이는 유럽(EU)과 미국이 규제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선진국들이 포스트2020에 맞춰 자국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이를 수입 제품에 적용하는 방식을 통해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에너지 체질을 한 단계 개선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정부는 과도한 우려를 경계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협약이 발효돼도 구체적인 세부 이행 계획은 2018년 이후에 나온다”면서 “정부도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국내 에너지와 주력 산업들의 체질을 개선할 로드맵을 마련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연유진·구경우기자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