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5A01 죄악주
‘죄악산업(sin industry)’. 비윤리적이거나 사행(射倖)을 조장하는 술·담배·도박 등을 다루는 산업을 일컫는다. 이들 산업의 사회적인 부정적 영향 때문에 종종 금지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내외 악재로 인한 경기불황에도 이들 산업은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이 팍팍해지자 오히려 사람들이 술·담배·도박 등에 더 기대는 것으로 보인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KT&G·강원랜드 등 죄악산업 업체들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담배 과점사업자인 KT&G의 지난 3·4분기 매출액은 1조 1,900억원, 영업이익은 3,846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4.9%, 3.8% 증가한 수준이다.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담배 판매량이 유지되고 있는데다 홍삼 판매량이 늘면서 실적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 역시 호조세를 나타내고 있다. 증권 업계에서는 강원랜드의 영업이익이 올해부터 오는 2018년까지 연평균 9.4% 증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들의 전체 매출은 2014년 2·4분기 마이너스로 돌아선 후 올해 2·4분기까지 9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마·경륜·복권 등 사행산업도 마찬가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사행산업 매출 규모는 총 174조4,000억원에 달했다. 사행산업 매출액은 2006년 12조원, 2010년 17조3,000억원, 2014년 19조8,000억원 등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더니 지난해는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전년 대비 9.9% 증가한 15조9,700억원을 기록했다.
주식시장에서도 이들 죄악산업 기업은 효자 종목으로 꼽힌다. 최근 한 증권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랜드는 1999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후 주당 3만6,800원에서 올 9월13일 기준 11만6,500원까지 올랐다. 상장 당시부터 KT&G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주당 누적 배당금은 3만9,750원이다. 배당금을 합친 수익률이 327%이고 이를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9.5%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143% 상승했고 연평균 수익률은 5.7%에 그친다.
죄악산업의 꾸준한 실적과 기록적인 주가수익률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미국의 알트리아. 말보로와 필립모리스를 생산하는 세계 1위의 담배 그룹으로 1822년 설립됐다. 만일 이 회사 주식을 1900년 1달러에 매수하고 배당금까지 재투자했다면 115년이 지난 지난해 말 현재 가치는 무려 628만달러에 이른다. 단순계산한 수익률이 628만 배다.
영국 비즈니스스쿨 금융고고학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술·담배·도박 등 죄악산업 관련주가 19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식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것은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더욱이 이들 산업은 경기의 흐름을 크게 타지 않는다. 시장에서 독점 또는 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매출도 안정적이다. 알트리아의 경우 최근 5년간 매출이 238억~254억달러 수준에서 크게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경기불황으로 우울해진 사람들의 술·담배 소비가 늘면서 매출이 증가하고 주가에 긍정적으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죄악산업 관련주는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우호적인 정책을 펴기 때문에 경기방어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해외에는 ‘바이세스(VICEX)’ 같은 담배와 주류·카지노·무기회사 주식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뮤추얼펀드까지 있다.
사행산업은 정부 세수에도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경기불황을 전혀 타지 않고 매출이 증가하면서 관련 세금과 부담금 등 정부의 조세 수입도 이에 비례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사행산업 관련 정부의 조세 수입은 21조4,800억원에 달했다. 사행산업 전체 매출액의 12.3%를 조세로 거둬들인 셈이다. 현재 담뱃세에는 74%, 주류(소주·맥주)에는 72%(주세의 30%를 교육세로 추가 납부), 카지노(외국인 전용) 46%의 세금 및 부담금이 붙어 있다.
김윤오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죄악산업은 국가의 세리(稅吏) 역할을 한다”며 “담배·주류·카지노 산업은 다양한 세금과 부담금으로 국가 경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