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고광본 정보산업부장 사회로 ‘노벨과학상을 위한 과제’ 대담에서 이광복(왼쪽)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과 김상선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가 기초과학 연구지원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이호재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일수록 원천·기반 기술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과학기술 중심 국정운영이 이뤄져야 합니다. 기초 기술 생태계가 조성되면 노벨상은 부가적으로 따라올 것입니다.”(김상선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권장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초과학 투자는 시작한지 30년도 안돼 노벨과학상 수상은 인내를 갖고 좀 더 격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이광복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
올해 노벨과학상 수상의 영광은 미국,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에 돌아갔다. 일본이 22명의 수상자를 배출하고 중국도 지난해 수상자가 나왔지만 한국은 올해도 빈손이었다. 민관 합쳐 연구 개발(R&D) 투자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29%(86조원)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말이다.
지난 7일 서울 서대문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고광본 정보산업부장 사회로 ‘노벨과학상을 위한 과제’ 를 주제로 한 대담에서 과학 전문가들은 “기초연구 투자 확대와 과학기술 중심의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드론·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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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이후 시작된 한국 과학의 역사는 기초·기반 기술은 엄두도 못내고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응용·실용화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해 추격하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경제개발을 했다. 기초과학 연구에 본격 투자한 것은 겨우 1989년부터인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초·기반 기술에 투자하지 않고서는 부가가치를 올릴 수 없도록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김 교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서 벗어나 우리가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찾아내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가보지 않은 길에서 꽃을 피울 씨앗은 소프트웨어와 수학 등 기초과학”이라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로봇만 해도 인공지능이 발전해야 하고, 드론이나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라며 “4차산업 혁명 시대에는 선진국만 벤치마킹해서는 뒤처질 수밖에 없으며 신산업에서는 이미 중국이 우리를 앞서 나가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기초과학 예산 비중을 좀 더 높이는 게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지난해 기초과학 투자는 정부 R&D 투자금 19조942억원 중 1조1,195억원으로 5.8%에 그쳤다. 제한된 연구비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서 과학자들의 사기를 진작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도 이들의 지론이다. 연구비를 타기 위해 단기 전시 유행성 프로젝트를 만들어 공무원 로비에 치중하고 연구비도 사적으로 유용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적발되고 있으나 4만여명의 연구자 중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IMF 외환위기 사태나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도 R&D 예산이 10%씩 늘었지만 올해와 내년은 전년과 비슷한 실정”이라며 “1+1을 해도 과학계에서는 1, 100, 1,000이 될 수 있어 어느 분야보다 깨끗한 과학계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게 해야지 소수의 연구비 부정사례만 부각되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연구소가 3만7,000개라고 하지만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유명무실하게 운용하는 곳도 적지 않다”며 민간의 R&D투자액은 거품이 많은데 이제는 기업이나 대학이나 기초과학 연구에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본부장은 “내년에는 기초연구 예산이 1,000억원대나 늘고 연구재단도 장기 연구 프로젝트 활성화를 위해 5년 지원에 이어 추가로 5년 연장을 일부 시행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젊은 연구자에게 생애 첫 연구비를 과감히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에게 100만~200만달러를 연구 인프라로 지원하는데 우리는 제일 지원을 많이 하는 카이스트나 포스텍도 그 10분의 1에 그친다”며 “4년제 대학 교수들이 모두 연구자가 되도록 하고 있는 것을 일부 교수는 교육에 전념하도록 해 효율적으로 연구비를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도 “이런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하는데 대학도 기금을 좀 투자하고 과학 기부 확산을 위해 정부는 세제를 다듬고 당국과 언론은 대학평가도 논문·특허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물론 연구비 부정은 엄격히 처벌해야 하지만 적발·처벌 위주에서 벗어나 미국처럼 예방행정으로 전환하고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과학기술 중심 국정운영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진료, 자율주행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이 정보기술(IT)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과학기술 중심 국정운영은 물론 국회에도 과학 전담 상임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본부장은 “최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과학재단을 만들며 기초과학 투자에 나선 것처럼 기업이나 대학, 개인 재단 등이 기초과학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정부가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교육계도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인재 육성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벨상에 관해서는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 때부터 기초연구 투자를 해 22명의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데 비해 한국은 1989년에야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을 제정했다. 이 본부장은 “노벨과학상 수상이 결코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연구재단 입장에서는 수상이 늦어져 죄송하다”며 “앞으로도 수상자 배출에 시간이 꽤 걸릴 수 있지만 기초·기반 기술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국민들께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이어 “노벨상 이전에 과학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연구자들이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5년 내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리라고 보며 이후 우후죽순처럼 수상자가 배출될 수 있다”며 “과학기술계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자동차와 호텔 없이도 세계 최대 택시와 호텔 회사가 각각 된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산업의 틀이 바뀌고 있다”며 “4차산업 혁명 시대에 맞게 제도와 규제를 바꿔 나가고 정부와 정치권은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